(산티아고를 그리다) 점점 줄어들고 있다, 우리의 산티아고 길이....

산티아고 2017.7.5(43,174걸음)
오늘은 포르트마린에서 팔라스 데 레이까지 걸었다.

아침에 좀 일찍 나왔더니 해도 안 뜨고 해서 밖에서 사진을 아예 찍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냥 알베르게 로비에서 한컷을 찍었다.
그러고 나와서 몇 걸음 걸으니 마을을 벗어나 숲으로 들어서게 되어 있었다.
이런, 아직 해가 뜨지 않아서 앞에 아무 것도 보이질 않는다.
순례자들은 이런 때를 대비해서 손전등을 들고 다니는 것을 많이 봤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어두울 때 길을 나선 적이 그동안 한번도 없었어서 손전등의 필요성을 느끼지도 못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핸드폰 후레쉬를 켜고 걸어야 했다.
난 사실 살짝 무서웠다. 정말로 깊은 숲에 높은 나무로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아 겨우 발 아래 길만 핸드폰 후레쉬로 비춰주고 있었다.
기운도 스산하고, 처음 닥치는 순례길의 모습이어서 더 했던 것 같다.
오늘 새벽에 보니 어제 저녁을 같이 먹었던 목사님 부부는 우리 보다 아마 한시간 정도 전에 나가시는 것 같았는데 지금보다 더 어두웠을 것이다. 처음 그렇게 일찍 나서는 것이라 더 무섭지 않았을까 걱정이 됐다.
게다가 우리가 아침에 일찍 나서야 하루 걷는 게 수월하다고 어제 조언을 해준 터라 더 찔리는 마음에 걱정이 됐다.
다행히 나중에 다시 만났을 때, 일찍 나서서 쉽게 걷고 목적지에도 일찍 도착해 좋았다고 말씀해주셔서 고마웠다.
어둠 속에서도 한두 사람 길을 나선 순례자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정말로 어두워도 길을 나서는 사람이 꽤 많이 있다.
어두워서 표지판도 잘 보이지 않고, 여기 저기 표시 해두었을 화살표도 잘 보이지 않았다.
열명 정도 되는 사람이 서로 가지고 있는 손전등을 의지해 걷다가 단체로 길을 잘못 들어서 약간 되돌아오기도 하고, 새벽 순례길은 이런 저런 고충이 있었다.
날이 조금씩 밝으면서 주변의 산과 길 그리고 사람들이 육안으로도 보이기 시작하는 푸른 새벽이 되었다.
약간의 안개만 남기고 주변 경치에 색도 보이기 시작하니 점점 순례자들이 많아지고 있다.

이렇게 사람이 줄줄이 많이 가는 건 우리가 산티아고 걸으러 와서 처음 보는 장면이다.
이 많은 사람들 중에 반 이상이 스페인 사람이다.
다들 이제 겨우 하루, 이틀 걸은 사람들이라 조잘조잘 신이 났다. 스페인 사람들은 모이면 수다도 많고 목소리도 커서 아주 시끌시끌하다.
아마도 한국에 중국인 관광객이 단체로 있으면 우리가 느끼는 정도의 소란이라고 생각하면 비슷할 것이다.
저러다 발에 물집좀 잡혀봐야 이게 까미노구나 하고 알 것이다. 그러면 아마도 수다도 좀 줄어들려나?
언제나 조용한 분위기와 가벼운 인사, 뭔지 진지한 듯한 대화를 주고 받던 지금까지의 분위기와는 180도 달라진 분위기이다.

스페인 사람들은, 아니 내가 스페인을 다 돌아본 것은 아니니까 최소한 까미노길에 사는 스페인 사람들은 개를 많이 기른다.
이 사람들이 개를 많이 기르는 이유는 여러가지 일 것이다.
소몰이용 개, 양몰이용 개, 애완 개, 집 지키는 개 등 다양한 이유로 기를 것이다.
그래서 순례길 가에 있는 집들에 가끔 개를 조심하라는 표지판이 붙어있는 경우가 있다.
순례길에는 다양한 나라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걷고 있기 때문에 그 표지판에 인상적으로 그림을 그려놓는 경우도 많다. 아무튼 이집 개는 순례자도 무는가보다. 아주 무섭고 대책없는 개가 사는 집에 붙어있는 개조심 표지판이다.

레옹을 지나고 산간지대에 접어들면서 사실 경치는 우리에게 그닥 새롭지 않다.
우리가 귀농해 살던 상주와 비슷한 경치가 펼쳐질 때가 많다.
사과나무도 많고, 호두나무도 있고, 텃밭에, 작은 산길, 우거진 나무 숲, 게다가 길에 핀 토끼풀까지 너무나 우리나라 시골의 모습과 닮아있다.
어쩌다 보이는 돌담도 제주도에서 흔히 보는 모습이다.
오래된 나무 숲은 다양한 종류의 나무들이 자연스럽게 자라고 있는 모습이 제주도의 곶자왈의 모습을 닮았다.
그래서 레옹 이후 경치는 우리에게 크게 이색적으로 다가오지 않아 걷는 내내 경치를 보는 건 좀 심심했다.
그래서 남편이랑 다음에 다시 산티아고에 오게 되면 생장부터 레옹까지만 걷자고 말했을 정도이다.
그 구간이 이색적이고 스페인스럽고 해서 볼 것도 많고 감흥도 많고 그래서 좋았기 때문이다.

한참을 걷다가 보니 길에서 말을 타고 순찰을 돌고 있는 경찰들이 보였다.
어제도 길에서 소매치기 소녀들을 보았는데, 이런 저런 사건 사고를 예방하고 대처하기 위해서 순찰을 돌고 있는 것이겠지?
어쨌든 걷는 사람들에게 방해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옛날스러움을 유지하기 위해서인지 알 수는 없지만 말을 타고 순찰을 도는 것이 매우 이색적이고 멋있어 보였다.
어제 100킬로 지점을 통과한 이후에 만나게 되는 산티아고 표지석은 우리를 깜짝깜짝 놀라게 한다.
하루 20킬로 걸을 때는 하루에 몇번이나 걸어온 킬로수를 확인하며 걸었었다. 그때는 정말 오랫동안 걸은 것 같은데도 겨우 1, 2킬로 걸은 것일 때도 있었고, 오후 늦게 정말로 지쳤을 때는 아무리 걸어도 겨우 200미터, 300미터밖에 앞으로 나가지 못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100킬로 지점을 지나고부터는 표지판을 볼 때마다 “벌써 그렇게 많이 걸었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킬로수가 확확 준다.
한걸음 한걸음이 너무나 아까운 시기이다.
점점 줄어들고 있다, 우리의 산티아고 길이...
이 글은 2017년 6월 10일부터 7월 8일까지 산티아고 길을 걸었던 우리 부부의 찬란한 추억이 담긴 글입니다. 사진은 대부분 남편(@lager68)이 찍었습니다. 글은 제가 썼는데 많이 미숙한 글입니다. 그럼에도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합니다.
이 글은 스팀 기반 여행정보 서비스
trips.teem 으로 작성된 글 입니다.
이렇게 멀고 험한 길을 걷는 순례여행
젊은 날에 하지 못했고
앞으로도 기회를 잃었음을 후회하며
두고두고 부러움으로 남을
하이트님의 빛나는 추억에 박수를 보냅니다.
산티아고에 가보면 그 길을 걷는 분들이 거의 나이드신 분들이에요.
자신이 걸을 수 있는 만큼만 걸으면 되는 것이라 나이는 전혀 상관이 없는 곳이랍니다.
혹시 짐이 부담이 되면 숙소간 짐을 옮겨주는 '동키 서비스'라는 것도 잘 되어 있어요.
서비스 비용도 그렇게 비싸지 않고요.
만약 꼭 가보고 싶은데 못가셔서 후회가 되실 것 같으면 용기내서 도전해 보세요.^^
말을 타고 다니는 경찰이라... 진짜 신기하네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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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이국적인 모습이더라구요.^^
장기여행일땐, 특히 트레킹할때는 손전등이 꼭 필요한것 같더라구요.
트레킹하는 사람들이 갑자기 많아진듯 합니다.
사람들이 많으면 분위기 휩쓸려 억지로라도 걷게 되더라는...ㅋ
아, 알고 계시네요. 저희는 그런 기본적인 것도 잘 모르고 무작정 걷기 시작했더니 어려움이 좀 많았습니다.ㅋ
네, 마지막 3, 4일 구간에는 정말로 사람이 많아요.^^
많은순례자들 그힘든 여정을 기쁘게 소화해나가는 모습보니 신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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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각자 자기만의 의지와 신념을 가지고 이곳에 왔다고 생각하니 언제나 신기하더라구요.^^
참 현지인들도 걷기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모양입니다.
스페인 사람들이 걷기를 좋아하는 것보다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것이 평생 한번은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하더라구요.
신념같은 거죠.^^
27살 때인가 어쩌다 히말라야 ABC 캠프를 혼자 열흘정도 올라간적이 있는데 그때 우연히 만난 한국 사람이 사진을 몇장 찍어서 이메일로 보내준다 했는데 아직도 않오네요....ㅠㅠ
순례길 글읽으면서 생각이 드는게 지난 추억을 사진과 글로 남기시면서 당시 체력적으로 힘들고 이걸 왜하나 하는 생각도 초반에 한번씩 드셨을것 같기도 하고 두분이 종종 싸워서 종종 삐지셨을것 같기도 하고 좀도 천천히 걸을걸 하는 아쉬움도 들겠다 하는 생각이 엄습하기도 하거든요.... 글 연제하시면서 그때 생각 정말 많이 나실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ㅎㅎ
그 귀한 사진을 왜 안 보내줄까요...
순례 초반에 체력적으로 힘들어 '내가 왜 여길 와서 이 고생이지.'하는 생각에 많이 울었습니다.ㅋ 그리고 걷다보면 거의 안 싸워요. 우리도 꽤나 티격태격 잘 싸우는 편인데 산티아고를 걸을 때는 한번도 안 싸웠네요. 서로 너무 힘든 걸 아니까 싸울 생각도 안나더라구요. 막판에 아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다음에 또 오면 되지 뭐..하고 마음을 달래봐도 한걸음 한걸음이 너무 아쉽고 소중하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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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한 만큼 아쉬움도 진할 듯 합니다.
어떤 기분 일지..
어려운 것을 해낸 성취감을 조금씩조금씩 누리고 싶은 마음, 언제 다시 올지 모를 길에 대한 아쉬움, 그 어떤 속박도 없었던 한달간의 자유에 대한 소중함...
뭐 그런 것들요.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