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그랬었다(8)
다시 콜롬보를 찾은 것이 7년쯤 되었다 하니(내 기억보다 정확하게 기억하는 현지 가족이 있어 감사하다) 33년 전 그 때도 수도와 지방의 차이는 너무나 달랐지만, 그 때의 콜롬보도 하나씩 꺼내보면 지금은 전혀 딴 세상이 분명하다.
어제 오후 도착하자 마자 찾은 곳이 어딘지 아직 잘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도심의 옛 창고시설을 개조해 조성된 새로운 타운 어디메쯤으로 신세계를 잠시 맛 보았고, 그 곳에서 서울 어느 지역을 떠올리는 것을 시작으로 콜롬보의 일상을 시작했다.
함반토타를 떠나 콜로보로 향하면서 고속버스가 시내로 들어가지 않고(도심은 주요시설도 밀집해 있고 보통 이상으로 복잡하니) 따로 생겼다는 Makumbura 하이웨이 버스터마날에 도착해, 도심 버스 터미널(도매상가 주변)페따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다행히 친절한 차장의 도움으로 짐가방을 잘 챙겼으니 그때까지는 아주 양호했었다. 그러나 뻬따에서 호텔까지 두개의 캐리어를 양손에 하나씩 끌고, 주말 빼따의 거리에???
아뿔싸ㅠㅠ 온갖 SNS를 잘 다룬다 자주하면서, 차라리 도심에 들어오기전 적당히 거리를 살피고 미리 내려 호텔로의 진입을 시도할 껄, 주말 상상 초월의 인파에 섞여 캐리어 두개와 뻬따 한 복판에 떨궈진 꼴이라니, 잠시 어리둥절 갈피를 잡을수 없다가 순간 빠르게 고민을 정리하고, 함반토타 시골에서도 성공한 택시나 tuktuk 사용 앱 픽미(pick me)를 사용하는 것이 낫겠다 여겨, tultuk을 잡아 호텔로 무사히 도착했다. 다행히 크게 고생하지는 않았지만 자칫 pick me를 사용하지 않았다면 얼마나 고생했을지 ~~
최근에 지어졌다는 4성급 비즈니스 호텔은 기타 다른 지역의 그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함반토타에서 묵었던 Jade Green과는 차원이 다른 깔끔함으로 지친 심신을 위해 잘 선택한 것 같다.
체크인 후 바로 다른 일정으로 한국에서 랑카를 방문한 일행과 저녁을 함께하며 8일여 함반토타의 생활과 그 옛날을 떠올리며 수다 삼매경에 잠시 처음 인사를 나눴던 분도 계신데 잠시 맥울 놓고 말았다. 누군가에서 열심히 기대만큼의 세상변화에 대응 못하는 지역의 현황을 말하는데도 정리정돈이 필요 했는데 그만 정제도 안된체 안타까움만 가득 채워 공유하고 만 우를 범한 것 같아 아쉬운 저녁이었다.
콜롬보가 넘 많이 변했다 놀라웁게, 잠시 Marriott hotel을 낀 쇼핑 몰 콜롬보시티센터(CCC)를 둘러볼 기회가 생겼다. 33년 전 그때는 이 곳에서 가장 크다했던 mall로는 Liberty Plaza, Majestic City 정도로 기억하는데, 물론 아직 찾지 못했거나, 아직 중국 자본의 실체를 보지 못한 상황이니 다는 모르겠지만 새삼 이런 극명한 변화나 지역간 불균형과 갭이 너무 많이 낯설었다.
저녁을 마치고 이어 친구 Latha의 둘째 아들 Rahiru 아내 Sanduni의 생일을 맞아 초대된 집(시내에서 조금 벗어난 외곽)으로 향했고, 이미 시간이 늦어져 걱정하며 도착했는데 그 곳은 언제 시작되었는지 한참 흥이 돋은 때였고, 그제서야 음료를 나누고 가라오케가 전개된 판이었다. 새삼 주말 가족들의 저녁 잔치 풍경에 놀라웠다. 개방된 창문, 이웃한 이들에게 소음과 불편울 초래할 수 있을텐데 주말 파티가 허용되는 문화적인 차이가(배트남이나 필리핀, 라오스에서도 겪은 경험이 있지만 우리와는 너무 다른 일상이나 경이로웠다). 라하루는 현재 두바이에서 근무하고 있고, 함께 못해 아쉬웠지만 열심으로 창업을 준비하며 노력하고 있고, 이미 두어차례 화상 소통을 마쳐서 서운함이 조금 가시기도 했다. 라히루는 고등교육을 받을 당시 스리랑카 전통 무용단 활동을 했었고, 그 때 같은 조직에서 만난 아내와 연애하고 결혼했고, 피는 정말 속일 수 없다는 것이 아내 산두의 집안에 흐르는 피가 역시 다르다는 것이 느껴졌다.
흥과 끼로 뭉친 산두네 가족들 어린이 부터 어른 한분 한분 모두 노래면 노래, 춤이면 춤에 이르기까지 금새 떼창과 합창, 합동 연주까지~ 한국에서는 보기 어려운 진기한 풍경에 새삼 놀라웠다. 늦은 시간 얼추 열시 반이나 됐울까 저녁 식사를 시작하는데 나는 저녁 식사를 마치고 합류한 상황이라 식사는 스킵하고 가족들의 세심한 보살핌으로 즐겁게 흥을 내다보니 어느새 밤 11시가 훌쩍 넘어 서둘러 식사시간 에 양해를 구하며 인사룰 마치고 호텔로 돌아온 시간이 자정에 가까웠다. 어제는 이른 아침 함반토타에서 콜롬보에 도착해 저녁과 생파까지 참 길게 하루를 산 셈이다.
스리랑카 음식을 손으로 먹는(අතින් කනවා.)차이는 이번 일정에서 또 여실히 체험하게 된다. 현지 음식은 손으로 먹어야만 제 맛이 나는데, 만약 포크나 스푼을 사용해 먹는 경우와 그 맛에서 너무 뚜렷한 차이가 있어, 두어번 포크를 들어 몇 입 넣고 이내 바로 손으로 먹곤 했다. 당시 봉사단들은 약 한달에 한번꼴 콜롬보로 모여, 동기들끼리 혹은 둘 셋 시내 구경도 하고 오랜만에 한국음식점을 찾곤 했는데, 지방에서 활동하는 봉사단들을 알아보시고, 그 때 한국음식점 주인장들깨서는 김치나 김치찌개등을 듬뿍 챙겨주셨던 기억이 생생하다.
우리들이 현지 음식에 아무리 능해서 불편없이 지냈다해도 현지를 떠나오면 이상하리만큼 김치나 라면의 향수에 허겁지겁 달려드는 버릇은 그 이후에도 수십년간 이어진 습관이 되어버렸다. 언제나 어느 곳에서든 현지 음식종류에 구애받지 않고 잘 챙겨 먹는대도, 늘 해외 출장 뒤의 첫끼를 거의 김치찌개로 해결한 것 같다. 건강이 많이 좋지 않지만 여전히 막내 동생을 챙기는 언니는 이전 일정을 마치고 돌아가면 첫끼를 그리 해결해 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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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선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