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21(토) 역사뇌피셜, 석경당의 후진과 요나라
고려와 조선을 망친 '주자학'의 나라인
송나라의 1세대인 '북송'에 대해 잠깐 살펴본다.
북송은 '조광윤'이라는 인물이 세운 나라인데
960~1127년까지 존속했던 나라다.
'북송'하면 선입견을 가질것이다.
수도가 지금의 '북경'쯤에 있었던거 아닐까? 하고
그러나, 말이 북송이지
수도가 개봉시로 황하의 남쪽이었고
가장 잘나갈때도 태원을 넘어가지 못했던 나라다.
당나라가 망할무렵에 생긴 10년짜리 국가들은
대부분 수도가 개봉이었다.
서기 936년에 요나라가 석경당을 도와서
개봉에 '후진後晉'을 세우도록 하고 그 댓가로
받았던 땅이 소위
연운16주
후진은 불과 10년짜리 국가였는데
후진건국을 도와준것도 요나라였고
멸망시킨것도 요나라였다.
후진의 역사를 소개하는 기록을 보면,
942년에 석경당이 죽고 권력다툼이 발생했는데
동의없이 왕을 세운것에 대해 요나라가 문제를 제기하고
전쟁이 시작된다.
위키백과의 내용을 보면,
947년, 요나라의 제2대 황제 야율덕광(야율요골)이 직접 군을 이끌고 세 번째로 원정을 하자, 후진의 중신 대장 두중위가 요나라에 항복하고 [요양]에서 후진의 주력은 격파되었다. 그대로 요나라군은 개봉부를 함락시키고 후진을 멸망시켰다.
라고 되어있다.
이 내용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역사인데,
그야말로 헛소리다.
물론 모든내용이 사실이다.
그런데 왜 헛소리라고 말하는가?
후진의 주력이 격파되었다는 요양
그 요양이 현재의 요녕성에 있다고 뇌속에 각인되어 있고,
역사학계, 방송등에서 끊임없이 세뇌를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실이 아닌 뇌피셜을 더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가치없겠지만
지도를 본다.
지도의 북쪽: 요양이라고 주장되는 '조양시'
지도의 남쪽: 개봉시
직선거리 1,034km
석경당의 역사와 지도를 대조해본다.
석경당이 요나라에 16개의 주를 바쳤다.
942년 석경당사후에 내분이 발생해서 전쟁이 붙었고
947년에, 요양에서 후진의 주력군이 격파되었다는데
연운16주는 뭐고
1500년전에 1천키로 떨어진 곳에서 주력군이 격파되어
나라가 멸망하는가?
이런 터무니없고 조악한 스토리는
'요양'과 '요하'를 현재의 요녕성이라고 억지를 부리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요양은 지금의 산서성 진중시 좌권현의 지명이었다.
개봉시에서 약 200km떨어진 지역이다.
이때 요나라가 개봉시까지 와서 후진을 멸망시키고 돌아갔고
960년에 '조광윤'이 북송을 세워 북쪽으로 진격을 한 것이다.
그때 회복한 지역이 산서성 태원이다.
명나라 이전의 한족들은
산해관을 넘어본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