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27(수) 낙랑군은 산서성 남쪽에 있었다.

한나라 무제로 불리는 유철이 고조선을 공격해서
왕검성(=임금성, 황성)을 함락시키고
4개의 군과 현을 설치했다고 전해지는데
그 중 유명한 것이 낙랑군이다.

낙랑군.JPG

<사진: 낙랑군(조선현)의 위치>

유학에 매몰되고
역사지리관련 지식과 정보가 부족했던 학자들은
중국의 일부 역사서만 접했고
그때문에 고조선이 평양에 있었다는 착각을 하게되었다.
그 과정에서 남송의 한족유학자들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는데
그것을 곧이곧대로 믿고 삼국사를 쓴 김부식이
낙랑군평양설을 만들어내는 참사를 빚었다.

그 동안 중국의 역사기록을 소개하면서
우리역사의 핵심을 정리한바 있다.
다시 한번 밝히자면

기자가 봉해졌다는, 또는 무왕을 피해 달아났다는 조선은
낙랑군 조선현이다. 일개 현이다.
그리고, 기자가 처음 봉해졌다는 곳은
산서성 장치시 유사현이다.
기자에 관한 역사기록에 근거하여
당나라때 기주를 설치했던 곳이다.

오늘은 4세기 산서성에 약30년정도 존재했던
전조의 5번째 왕인 유요에 대한 기록을 통해
낙랑군 조선현이 낙양에서 멀지않은 곳에 있었음을
추정해 볼 수 있는 기록을 소개한다.

유요(재위:318~328)는 약관(20세)에 낙양洛陽에서 협객생활을 하다가 사건에 연루되어 죽음을 당할 위기에 처하자, 조순과 함께 도망쳐 유수劉綏에게 갔다. 유수는 그를 서궤(書匱: 책을 넣어두는 궤짝)에 숨겨 왕충王忠에게 보냈고, 왕충은 그를 조선朝鮮으로 보냈다.
최악崔岳은 자가 원숭元嵩이며, 조선현朝鮮縣의 현령이었다.
최악崔岳은 유요에게 옷과 재물을 주어 서적을 구해 학문을 계속하게 했다.
<16국춘추>

낙랑군이 한국의 교과서에 나오는대로 현재의 평양에 있었다면
조선현도 그곳에 있었을텐데
과연 낙양에서 도망을 친 장소가 직선거리 1700km떨어진
한반도 평양이었을까?
대륙땅에 널린게 도주할 곳인데.
유요는 또 전조를 세운 유연의 조카라고 전해진다.
낙랑군이 평양에 있었다는 주장은
이런 또 하나의 역사기록을 통해
말이 안되는 헛소리임을 쉽게 깨달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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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롭습니다.
@neojew 님이 이 글에서 표시한 낙랑군 조선현위 위치(산서성 남쪽)가 아래 글에서 표시한 패수의 위치와 비슷한 것 같네요~ ^^

이 분은 패수를 현재의 낙양근처에 있는 강이라고 비정하시더군요. 해석의 차이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