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9/08(월) 알고나니 관련 기록이 하나둘 나온다.
역사기록에 나오는 중요한 강이면서도
그 위치를 알지못해 고생했는데
진실을 알고나서 다시 기록들을 읽으니
관련된 모든것이 자연스럽게 이해가 된다.
4세기에 후조라는 나라를 세웠던 석륵의 기록을통해
역수의 위치를 다시 확인한다.
먼저 기록을 본다.
영가永嘉 6년(312년) 7월,
진晉나라 병주幷州자사이자 진위장군 유곤劉琨은 자는 월석越石인데, 그의 형의 아들인 북중랑장 유연劉演이 업구鄴口에 주둔하고 있었다. 석륵이 황하를 건너자, 유연은 삼대三臺에 의지하여 스스로를 굳게 지켰다.<중략>
석륵의 여러 장수와 참모들은 업鄴을 도읍으로 삼으려 의논하고,
삼대를 공격하여 점거하려 했다.
<중략>
겨울 12월, 광평廣平(=한단)의 유륜游綸과 장시張豺가 수만 명의 무리를 이끌고
기주冀州자사 왕준王浚의 임시 직위를 받아 원향苑鄕에 주둔했다.
진晉 민제愍帝 건흥建興 원년(313년) 여름 4월,
석륵石勒이 석호石虎에게 업鄴의 삼대三臺를 공격하게 했다.
업이 무너지고 북중랑장 유연劉演은 임구廩丘로 달아났다.
석륵은 원향苑鄕을 습격하여 유륜游綸을 붙잡아 주부로 삼았다.
왕준王浚은 다시 오환烏丸족 박성薄盛을 청주靑州자사로 삼고,
조숭棗嵩에게 모든 군대를 독려하여 역수易水에 주둔하게 했으며,
단질육권疾陸眷을 불러 함께 석륵을 공격하려 했다.
조조가 세운 삼대가 있는 '업'이 나오고, 원향이 나오고, 역수가 나왔다.
위에 표시된곳이 원현이고, 청색이 현재의 명하이자 기록속의 역수이며
아래에 핑크색 박스가 업성이 있던 곳이다.
하북성 한단시의 남쪽과 서쪽에서 일어났던 일이다.
역수가 어디에 있는지 몰랐을때는
이 기록을 읽어도 꿈속을 걷는것만 같았다.
그러나 이제는 명확하고 합리적으로 설명이 된다.
여기까지 오는데 몇 년이 걸린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