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지도 못하면서 아는척은 하고싶고, 진심은 하나도 안 보이고

in #avle14 hou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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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포천시 가평군을 지역구로 하는 김용태 위원장은 대선 패배 이후 처음으로 21일 제주를 방문, 오전 11시20분께 국민의힘 제주도당에서 진행된 기자간담회를 자리에서 제주4.3의 완전한 해결과 제주 미래 발전 산업 육성, 상급종합병원 지정 등 의료망 구축, 차질 없는 제주 제2공항 추진 등을 언급했다.

"야당이라 할지라도 국민에게 한 약속을 지켜야 한다"며 제주 관련 현안을 얘기하는 과정에서 김 위원장은 4.3에 대한 무지함을 드러냈다.

모두발언에서 김 위원장은 "4.3에 대한 보수적 시각과 진보적 시각이 대립된 부분이 있는데, 중요한 것은 이념 대립 속에 제주 주민들의 삶이 처참하게 희생당한 것"이라며 운을 뗐다.
그러면서 "당시 미군정과 이승만 정부는 단독선거에 반대하는 남로당 총파업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수만명의 무고한 제주 주민을 잔혹하게 희생시켰다"고 말했다.
실언 가능성을 생각해 '남로당의 총파업이라고 표현한 게 맞느냐'는 추가 질의에도 김 위원장은 "과거 4.3이 미군정과 이승만 정부의 단독 선거를 반대하는 남로당의 파업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고 생각한다"며 보수적 시각을 언급하면서 실언이 아니라고 했다.
4.3 때 남로당 총파업은 없었을뿐더러 3.10 민·관 총파업을 얘기한 것이라면 논란은 더욱 커진다.

1947년 3월1일 제주 관덕정 앞 '3.1절 기념대회'에서 벌어진 경찰의 발포가 4.3의 시발점이다. 1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3.1절 기념대회 발포사건'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도민사회의 목소리가 커졌고, 이는 1947년 3월10일 민·관 총파업으로 번졌다.
제주도청과 각 군·읍·면사무소, 학교, 우체국, 운수회사, 은행을 비롯해 심지어 경찰과 미군정 소속 국민까지 참여한 총파업은 당시 도내 관공서 직원의 약 95%가 참여하는 대규모로 진행됐다. 친일 경찰의 반발심 등을 이유로 파업 규모가 컸고, 참여자들은 좌·우익을 가리지 않았다는 당시 미군정의 자체 보고서도 존재한다.

1차산업 비중이 매우 높은 시대 상황 속에서도 농민마저 밭을 일구는 작업까지 멈추면서 당시 전체 제주도민의 80% 이상이 파업했다.

이러이러한 말을 해야겠다 라는 생각을 하지만
사실 진심이 아니다보니, 대충 보고 대충 말하고

정말 국민의힘에서 소위 청년정치인이라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기대가 전혀 안되는 모습이네요

흔하게 보는 *아치 같은 인상밖에 없는 이유는
뻔해서 금방 들킬 거짓말로 그때만 넘기려는 저런 얄팍한 자세때문이지요

대통령 기사나 찾아봐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