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달의 궁전, 폴 오스터
2025.8.4(월)

언젠가 미국의 소설가 폴 오스터를 우연히 알게되었고, 크레마클럽에서 그의 소설을 찾아보고 서재에 넣어두었다. 우연히 크레마클럽이 몇일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급하게 e-book을 다운로드받아서 읽었다. 아마 시간이 많이 있었다면 뒤로 좀 더 미뤘거나 아니면 읽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소설의 제목처럼 이 소설의 큰 흐름은 달이 차는 것처럼 상황이 극한으로 치닫다가 다시 달이 비워지는 것처럼 모든것을 잃어버린 채 아무것도 남지 않는 상황이 계속 반복된다. 주인공의 우울한 인생, 그러다 우연히 만난 토머스 에핑의 결말을 알수 없는 영화같은 인생, 그리고 마지막으로 솔로몬 바버의 기구한 인생은 이 책의 재미를 더해주고, 끝은 예상치 못한 커다란 반전으로 마무리 된다. 재미있게 읽었고, 소설 중간에 내 마음을 흔들었던 문단을 기록으로 남겨본다.
그가 더 오랫동안 자신을 숨기면 숨길수록, 마침내 그곳을 떠났을 때 더 안전할 것이었따. 그래서 그는 가장 엄격한 방법으로 자신의 삶을 재조직하고 그곳에서 보내게 될 시간을 연장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했다. 식사를 하루 한 끼로 제한하고, 겨울에 대비해서 충분한 땔나무를 쌓아 놓고, 몸을 튼튼하게 유지하곤 했다. 그는 자신을 위한 도표와 스케줄을 만들어 매일 밤 침대로 가기 전에 자기가 그 날 하루 동안 쓴 물건들을 꼼꼼하게 적곤 하면서 가장 엄격한 원칙을 지키도록 자신을 채찍질했다. 처음에는 자기가 세워 놓은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때로는 한 조각의 빵이나 한접시의 통조림 스튜를 더 먹고 싶은 유혹에 굴복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 노력은 자체로서 가치가 있어 보였고, 그가 늘 방심을 하지 않는 데도 도움이 되었다. 그것은 자신의 나약함에 대항하여 자신을 시험하는 한 방법이었기에, 목표와 실제가 차츰차츰 더 가까워질수록 에핑은 그것을 개인적인 승리로 여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이제 목표를 달성하는 일이 더 이상 게임이 아니라 그 일을 하기 위해서는 열광적인 헌신이 요구된다는 것. 힘겨울 정도로 전심전력을 기울여야만 절망으로 빠져 들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토머스 에핑, 돈도 꽤 있었고 예술가의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그는 모든 것을 잃고 유타 사막의 어느 동굴에 숨어 지내는 신세가 된다. 최대한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모든 것을 인내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철저히 자기자신을 제한하며 그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는 동안 그 안에서 희열을 느끼고 절망을 이겨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의 이겨내고자 하는 의지가 절절히 느껴졌다. 절망 속에서 실낱같은 희망을 부여잡고 끝까지 놓지않는 절실함. 지금까지 나의 인생에서 그런 필사적인 의지를 불태웠던 적이 있었던가.
첫번째는 누구에게도 그 그림들을 절대로 보여 주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이미 내려진 결론이었지만, 그렇더라도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괴로웠다기보다는 사실상 자유롭게 풀려난 듯한 느낌이었다. 이제 그는 다른 사람들의 견해라는 부담으로부터 벗어나 그 자신만을 위해 그리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그가 자기의 예술에 접근하는 방법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난생 처음으로 그는 결과에 대해 걱정을 하지 않았고, 그 덕분에 <성공>이니 <실패>니 하는 용어는 갑자기 의미를 잃고 말았다. 그는 예술의 참된 목적이 아름다운 작품들을 만들어 내는 데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이해를 하는 방법, 세상 속으로 파고들어 거기에서 자기의 자리를 찾아내는 방법이었다. 그러므로 어느 한 개인의 캔버스에 깃들일 수 있는 심미적인 특징들이 어떤 것이건, 그것은 사물을 본질적으로 파고들려는 투쟁에 몰입하려는 노력에서 생겨난 부산물이나 마찬가지였다.그는 풍경을 자기와 동등한 파트너로 여기고 자신의 의도를 별안간에 저절로 우연히 생겨나는 일이나 야수적인 특징들의 분출에 내맡기면서 그때까지 배워 왔던 규칙들을 애써 잊어버렸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자기 주위의 공허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풍경은 캔버스에 옮기는 행위가 어떤 식으로든 그에게서 내면화된 것이었다. 이제 그는 풍경의 초연함을 자기 자신에게 속하는 것으로 - 자기 자신이 그 거대한 공간의 고요한 힘에 속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 느낄 수 있었다. 에핑은 자기가 그린 그림들이 강렬한 색채와 즉석에서 솟구치는 이상한 힘, 그리고 형태와 빛의 소용돌이로 채워진 생경스러운 것들이었다고 했다. 그는 자기의 그림들이 흉한지 아름다운지는 몰랐지만 그것은 아마도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 그림들은 그만의 것이었고 그가 전에 보았던 다른 어떤 그림과도 같아 보이지 않았다. 그는 50년이 지났지만 그 그림들을 하나하나 다 기억할 수 있다고 했다.
에핑은 홀로 동굴에서 지내면서 우리사회가 정의한 성공과 실패로부터 자유로워졌다. 나를 비롯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성공을 위해 자기 자신을 몰아붙이고 있을까. 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나도 함께 자유로워지는 것을 느꼈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일이란 다른 사람의 잣대에 나를 재단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내가 원하는 것을 선택한 일이다. 에핑은 그동안 자기가 배웠던 모든 간교한 기법들을 버리고 나서야 자기만의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모든 풍경은 그를 통해 캔버스에 표현되었고, 그 작품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에핑 자신이 되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그는 만족할 수 있었다.
다음에는 겨울이 되었다. 그에게는 아직 몇권의 공책과 연필 상자가 남아 있었지만 그는 그림에서 데생으로 옮겨 가지 않고 추운 몇 달 동안 동굴 안에 웅크리고 들어앉아 글을 쓰며 시간을 보냈다. 한 권의 공책에다 그는 전에 그림으로 표현했던 것을 말로 표현하려고 시도하면서 자기의 생각과 관찰을 기록했고, 다른 공책에다는 하루하루의 일상적인 일들을 계속 적어 나갔다. 그날 자기가 식량을 얼마나 소비했고 얼마나 되는 식량이 남아 있으며 양초가 몇 개 소모되었고 남아 있는 것은 얼마나 되는가 하는 등의 지출 내역을 꼼꼼히 정리하면서. 1월이 되어 1주일 내내 눈이 내리자 에핑은 하얀 눈이 붉은 바위들 위로 내려앉으며 자기에게 그처럼 익숙해진 풍경을 바꾸는 것을 보는 데서 즐거움을 얻었다. 오후에 태양이 모습을 드러내면 불규칙한 무늬로 눈을 녹여 아름다운 얼루무늬 효과를 만들어 냈고, 바람이 거세어지면 하얀 먼지 같은 눈가루들이 공중으로 날아올라 열정적인 춤을 추듯 빙글빙글 소용돌이를 치곤 했다. 에핑은 그런 광경을 바라보는 데 물리는 법 없이 몇 시간씩 계속해서 지켜보곤 했다. 그의 삶은 이제 아무리 사소한 변화라도 눈에 띌 만큼 늦추어져 있었다. 물감이 다 떨어지자 그는 고통스러운 허탈의 시기를 겪었지만 다음에는 글을 쓰는 것이 그림을 그리는 일의 적절한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2월 중순경이 되자 공책들도 다 채워졌고 더 이상 글을 쓸 여백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 그러나 예상했던 것과는 반대로 기분이 처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때쯤 에핑은 자신의 고독 속에 너무 깊이 빠져 있어서 이제는 어떤 기분 전환도 필요하지 않았다. 전에는 거의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조금씩조금씩 그는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소설에서 나는 이 부분이 가장 좋았다. 자신이 가진 것을 소진해 가는 동안 에핑의 마음은 기쁨과 행복으로 채워졌다. 그림의 대안이 글이 될 수 있다는 것도 나에게는 놀라운 발견이다. 글은 별다른 도구가 필요하지 않고, 배울 필요없이 내 자신에게 마음만 열면 누구나 글을 쓸 수 있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이 세상에 만족할 수 있으니까.
나는 미국에 그처럼 오래된 문명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지만, 유타 주로 접어들 때쯤에는 에핑이 얘기해 주었던 것들 중 몇 가지를 이해하기 시작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지형에 감명을 받았다기보다(모든 사람들이 그것에 감명을 받는다) 시간 감각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땅의 거대함과 공허함 때문이었다. 그곳에서는 현재가 더 이상 같은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분이니 시간이니 하는 것들이 잴수도 없을 만큼 너무 짧아서 주위에 있는 것들에 눈을 뜨고 나자 세기라는 관점에서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천 년이라는 시간이 한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난생 처음으로 나는 지구가 하늘을 가로질러 선회하는 혹성이라고 느꼈다. 나는 지구가 크지 않다는 것, 아니 거의 현미경적으로 작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온 우주에 있는 모든 물체들 가운데서 지구보다 더 작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마지막으로 주인공 마르코 포그가 에핑이 머물렀던 동굴을 찾기위해 유타사막으로 여행을 시작하는 장면이다. 그 사막의 광활한 장관에 압도당하는 순간 주인공은 지금까지 겪어온 시련과 고통이 모두 사소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이 세상이 내 고통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착각하고 산다. 하지만 이러한 광대한 자연을 마주하는 순간 역사속의 거대한 시간흐름을 보면서 우리 자신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지, 그 고통들이 얼마나 상대적인지 깨닫게 된다. 고통을 초월하는 우주적 관점. 우주의 무한한 흐름 속에 내가 놓여있다는 느낌. 그 고독과 위안. 우리가 자연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이유다.
이 책은 의무감에 읽기 시작했다가 나도 모르게 서서히 빠져들었다. 감동, 웃음 그리고 극적 반전까지. 매우 좋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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