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스토너, 존 윌리엄스
2025.8.4(월)

유튜브에서 이동진 영화평론가가 이 책을 소개해 주어서 알게 되었다. 1965년에 쓰여진 책이지만, 우리나라에는 2020년에 번역되어 나왔다. 책의 첫 부분은 너무나 단조롭고 특별할 것 없었다. 미주리 외곽 지역의 어느 농가에서 태어난 농부의 아들이 느즈막히 미주리 농대에 입학하게 되고, 이후 영문학에 관심을 가져서 박사과정을 밟고 되는 이야기. 주인공 스토너의 성장과정을 나른한 눈으로 읽어내려갔다. 그리고 그의 불행은 결혼에서부터 시작된다.
그의 결혼생활은 너무나 끔찍했다. 사랑없는 결혼. 그의 아내 이디스는 스토너를 처음부터 사랑하지 않았다. 단지 그와의 결혼을 통해 그녀의 부모집에서 탈출 하려 했던 것 같다. 집안 어디에도 그의 자리는 없었다. 그리고,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로맥스 교수는 스토너의 동료로 스토너가 암선고를 받고 학교를 떠날 때까지 그를 괴롭혔고, 주인공이 사랑하는 그의 딸 그레이스는 엄마의 비뚤어진 사랑을, 그녀의 인형노릇을 견디지 못하고 원치않는 임신을 한 후, 집을 떠났다. 그러는 동안 스토너는 이 모든 불행과 고통을 묵묵히 받아들이고 감내했다. 그리고 자신이 처음부터 사랑에 빠졌던 영문학과 교육자로서의 길을 외로히 홀로 걸었다. 그가 암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무엇하나 쉽게 풀리지 않는 그 인생이 가슴아팠다. 내가 스토너라면 너무나 억울하고 화날 것 같았다. 미친 듯이 세상을 향해 울부짖어야 속이 후련할 것 같았다. 하지만 스토너는 분노하지 않는다. 고통을 감내하고 내면으로 침잠한다. 오히려 평온함을 느끼면서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일과 가치관을 깨닫고 그것으로 몰입해 나아갔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그는 다시 생각했다.
기쁨 같은 것이 몰려왔다. 여름의 산들바람에 실려온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이 실패에 대해 생각했던 것을 어렴풋이 떠올렸다. 그런 것이 무슨 문제가 된다고. 이제는 그런 생각이 하잘것 없어 보였다. 그 인생과 비교하면 가치 없는 생각이었다. 그의 의식 가장자리에 뭔가가 모이는 것이 어렴풋하게 느껴졌다. 눈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좀 더 생생해지려고 힘을 모으고 있었지만, 그는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었다. 자신이 그들에게 다가가고 있음을 그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원한다면 그들을 무시할 수도 있었다. 세상의 모든 시간이 그의 것이었다.
주위가 부드러워지더니, 팔다리에 나른함이 조금씩 밀려들었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감각이 갑작스레 강렬하게 그를 덮쳤다. 그 힘이 느껴졌다. 그는 그 자신이었다. 그리고 과거의 자신을 알고 있었다.
그는 고개를 돌렸다. 협탁 위에 오랫동안 손도 대지 않은 책들이 쌓여 있었다. 그는 잠시 손으로 책들을 만지작거렸다. 가늘어진 손가락, 관절의 섬세한 움직임이 놀라웠다. 그 안의 힘이 느껴져서 그는 탁자 위에 어지럽게 쌓여 있는 책 더미에서 손가락으로 책 한 권을 뽑아냈다. 그가 찾고 있던 그 자신의 책이었다. 손에 그 책을 쥔 그는 오랫동안 색이 바래고 닳은 친숙한 빨간색 표지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이 책이 망각 속에 묻혔다는 사실, 아무런 쓸모도 없었다는 사실은 그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이 책의 가치에 대한 의문은 거의 하찮게 보였다. 흐릿하게 바랜 그 활자들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게 될 것이라는 환상은 없었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그의 작은 일부가 정말로 그 안에 있었으며, 앞으로도 있을 것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는 책을 펼쳤다. 그와 동시에 그 책은 그의 것이 아니게 되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책장을 펄럭펄럭 넘기며 짜릿함을 느꼈다. 마치 책장이 살아 있는 것 같았다. 짜릿한 느낌은 손가락을 타고 올라와 그의 살과 뼈를 훑었다. 그는 그것을 어렴풋이 의식했다. 그러면서 그것이 그를 가둬주기를, 공포와 비슷한 그 옛날의 설렘이 그를 지금 이 자리에 고정해 주기를 기다렸다. 창밖을 지나가는 햇빛이 책장을 비췄기 때문에 그는 그곳에 쓰인 글자들을 볼 수 없었다.
손가락에서 힘이 빠지자 책이 고요히 정지한 그의 몸 위를 천천히, 그러다가 점점 빨리 움직여서 방의 침묵 속으로 떨어졌다.
스토너는 이렇게 생을 마감한다. 스토너의 인생은 우리가 아는 성공과는 거리가 멀다. 그도 죽음을 앞두고 '실패에 대한 생각'이 무의미함을 느꼈다. 자신의 존재를 기쁨으로 받아들였다. 나는 그 인생이 결코 좋아보이지 않는데 작가의 말은 다르다. 스토너야 말로 고통에 의해 파괴되지 않고 자신의 고귀한 자아를 지키며 살아 온 진정한 승자이라고 말한다. 작가의 말이 100% 와닿진 않지만 어느 정도 이해는 된다. 고통의 소용돌이에 휩쓸리지 않고 그 옆을 묵묵히 지나치 듯 살아온 스토너. 전장에서 살아남은 자, 승자 스토너.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두통이 생길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기는 처음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내내 머리가 너무 아팠다. 뒷목이 땡기고 속이 울렁거렸다. 너무 화가 났지만 책을 덮을 수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때는 알수 없는 허탈함에 긴 한숨이 나왔다.
참 어려운 책.
Upvoted! Thank you for supporting witness @jsw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