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 읽기, 박찬국
2025.8.4(월)

이 책은 서울대 철학과 박찬국 교수님이 대학생들을 위해 2012년에 집필한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 해설서다. 해설서가 아닌 번역서를 직접 읽고 싶었지만, 밀리의 서재나 크레마에는 번역서가 없어서 해설서를 먼저 읽어보기로 했다. 본문에 대한 해설이 잘 되어 있고 내용도 많지 않아서 쉽게 읽었다.
"에피쿠로스에 의하면 욕망의 충족으로서의 쾌락은 인생의 목적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런 쾌락에는 반드시 불쾌감이 뒤따르며, 따라서 인간을 그의 진정한 목적인 고통의 부재로 부터 멀어지게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순수하게 주관적으로 느끼는 욕구와 객관적으로 타당성을 지닌 욕구를 구별했다. 전자의 일부는 인간의 성장에 유해하고 후자는 인간본성의 요건에 일치하기 때문이다."
이기주의란 소유를 목표로 하는 삶의 방식이다. "나는 다른 모든 사람들, 즉 내가 속여야 할 고객과 없애야 할 경쟁자와 착취해야할 노동자에 대해서 적의를 품어야 한다. 소망에는 끝이 없기 때문에 나는 결코 만족할 수 없으며, 나보다 더 많이 가진 사람을 시기해야 하고, 더 적게 가진 사람을 두려워해야 한다. 그러나 나는 이 모든 감정을 억눌러야 한다. 그것은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가장하듯이 나 자신을 미소를 띤 이성적이고 성실하고 친절한 인간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서이다."
"탐욕과 평화는 서로 어울릴 수 없는 것이다."
사랑, "그것은 생명을 주는 것이 아니라 압박하고 약화시키며 질식시켜 죽이는 행위다. 사람들이 사랑이라 '부르는' 것은 대개가 그들이 사랑하고 있지 않다는 현실을 숨기기 위한 말의 오용이다. 얼마나 많은 어버이가 자식을 사랑하고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로이드 드 모스가 밝힌 바로는 과거 2천 년간의 서양역사 속에서 보고된 육체적 고문에서 정신적 고문에 이르는 자식에 대한 잔혹행위, 무관심, 완전한 소유 그리고 사디즘이 너무나도 충격적이기 때문에 자식을 사랑하는 어버이는 통례라기보다 오히려 예외라고 믿어야 할 정도이다."
일단 이 지점에서 한마디를 남기고 싶다. 사랑은 주는 것이지 조건짓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사랑을 주는 조건으로 아이가 잘하기를 바라는 것은 나의 소유욕을 채우기 위한 수단이다. 아이를 존재를 보는 것이 아니라 나의 소유물로 보는 것이다. 아이가 내 뜻을 잘 따를 때만 사랑을 주는 관계는 결국 주인과 노예의 관계라는 것을 명확히 이해해야 한다. 사랑은 아무런 조건 없이 주는 것이며, 조건이 있는 사랑은 사랑이라는 탈을 쓴 강요와 억압이라고 할 수 있다. 나도 아이가 어렸을 땐 이 걸 몰랐고, 아이도 나도 많이 괴로웠다. 나같은 실수를 저지르는 사람이 없길 바라는 마음에 이 글을 남긴다.
"사랑이 생산적인 능동성인 이상 우리는 사랑 속에 '있거나' 사랑 속을 '걸을' 수 있을 뿐이며 사랑에 '빠질'수는 없다. 왜냐하면 빠진다는 것은 수동성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구애기간 중에는 어느 쪽도 아직 상대방에게 자신이 없기 때문에 각자가 상대방을 자기 것으로 삼으려고 노력한다. 양쪽 다 살아 있어 매력적이고 흥미를 끌며 아름답기까지 하다 - 살아 있는 상태는 항상 얼굴을 아름답게 만드니까. 어느쪽도 상대방을 '소유'하고 있지는 않다. 따라서 각자는 '존재', 즉 상대방에게 주고 상대방을 자극하는 데 정력을 쏟는다. 많은 경우 결혼이라는 행위에 의해서 사태가 근본적으로 변한다. ...이미 상대방은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어떤 것, 즉 하나의 재산이 되었기 때문에 상대방의 환심을 사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 두 사람은 사랑스러운 인간이 되려고 노력하거나 사랑을 연출하려고 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들은 권태를 느끼게 되며 옛날의 아름다움은 사라지고 만다."
참고로, 요즘 부부상담의 대가인 이호선 교수님의 말에 따르면 부부관계는 '연기(Acting)'가 60%라고 한다.
종교, "인간은 아무것도 '소유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신'을 받아들일 만한 거소가 되고, '신'이 행동하기에 적합한 거소가 되기 위해서 인간은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모든 '자기의'소유물과 '자신의' 행동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이다. ... 만일 인간이 물건이나 생물 혹은 그 자신이나 신을 포기했는데 신이 여전히 인간 속에서 자신이 행동할 수 있는 장소를 발견할 수 있다면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 '장소'가 존재하는 한 이 인간은 가장 직접적인 빈곤에도 불구하고 가난하지 않다고 말이다."
"소유가 관계하는 것은 '물건'이며, 물건은 고정되어 있어 '기술할 수가 있다.' 그러나 존재가 관계하는 것은 '경험'이며, 인간경험은 원칙적으로 기술할 수 없다. 완전히 기술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페르소나' - 각자가 쓰는 가면, 남에게 보이는 자아 - 이다. 왜냐하면 이 페르소나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다른사람을 쉽게 평가하고, 나와 생각이 다른 진영을 쉽게 욕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점점 그 강도가 더해가고 있다고 느낀다. 대상을 모두 나와 같은 인간으로 집단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소유하거나 또는 버려야할 물건으로 보기 때문인 것 같다. 소유를 조장하는 사회가 심화될수록 이와 같은 분쟁과 극단화는 점점 더 심각해질 것 같다. 소유욕는 군비경쟁처럼 타인과의 비교에서 나온다. 이미 지구를 사라지게 할 만큼 많은 핵무기를 가지고 있지만, 인류는 더 많은, 더 좋은 무기를 가지기 위해 여전히 경쟁한다. 과연 우리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욕심을 버릴 수 있을까.
"밤과 낮, 잠과 깨어남, 성장과 노화의 리듬, 노동에 의한 세계를 건설할 필요성과 자신을 지켜야 할 필요성, 이 모든 요인들은 우리가 살기를 바란다면 시간을 '존중하도록' 강요한다. 육체는 또한 우리에게 살기를 원하도록 한다. 그러나 시간을 '존중하는' 것과 시간에 '굴복하는' 것은 별개의 것이다. 존재양식에서 우리는 시간을 존중하지만 시간에 굴복하진 않는다. ... 소유양식에서는 시간이 우리의 지배자가 된다. 존재양식에서는 시간은 왕위를 상실하고, 우리의 생활을 지배하는 우상이 되지 못한다."
"2, 3세기 동안 사람들은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일하는' 존재로서만 살아왔다. 인간성이 위축되고 그와 같이 인간성이 위축되고 외곡된 부모에 의해서 어린아이들이 양육되기 때문에 어린아이의 인간적 성장에 필요한 본질적 요인은 결여되고 만다. 이윽고 어른이 된 사람 역시 과잉노동을 강요받고 천박한 오락에의 욕구에 넘어가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게 된다. ... 절대적인 수동성, 자기를 피하고 자기를 잊어버리는 것이 그에게 있어서 육체적인 욕구가 된다."
바쁜 일상은 우리를 시간의 노예로 만들고 나라는 존재를 잃어버리게 만든다. 여유를 가져야한다. 소유하려는 욕심을 내려놓고 존재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남들보다 부족한 것에 조바심 내지 말고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물건이 아닌 존재로서 살아가는 방법이다.
이 책은 소유지향적인 삶을 강요받는 현대사회에서 왜 소유지향적인 삶이 인류의 파괴를 가지고 오는지를 잘 설명하고 있다. 결국, 나와 소유하고자 하는 욕구 사이에서 방황하지 말고, 나의 존재를 분명히 인식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주제이다. 매우 공감되고, 교훈적이고 훌륭한 책 '소유냐 존재냐' 를 꼭 제대로 다시 읽고 싶어진다.
These thoughts you've gathered about Erich Fromm's "To Have or To Be" invite us to reflect on who we truly are and how we shape our way of being, according to society's demands and our desire not to be just another one of the crowd. I loved reading them. Best regar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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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말씀 감사합니다. 프롬의 글은 정말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깊이 고민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당신도 그렇게 느끼셨다니 기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Thank you for your kind words. Fromm’s work really makes us reflect deeply on how we should live. I'm glad it resonated with you too. Have a great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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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한때 에리히 프롬이 유행이었던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저도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 여전히 에리히 프롬이 읽히고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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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에 출간된 책이니 1980년대에 사람들이 많이 읽었을 것 같네요. 정말 시대를 초월하는 훌륭한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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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서도 있군요. 저도 어릴때 읽고 감명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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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교수님이 학생들 강의에 참고하라고 쓴 책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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