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 100] 사람이 가장 사람다울 때

가젤이 가장 가젤다울 때는 언제인가?
"사자가 쫓아 올 때 가젤이 뛰는 것처럼.
목숨을 걸고 뛰는 순간, 가젤은 진짜 가젤이 되는 거예요."
하야요 센세의 말에 사람이 가장 사람다울 때는 언제일까 생각해 보았다. 나는 주저 없이 요금 체납으로 휴대폰이 끊기는 순간을 떠올렸다. 휴대폰 요금마저 낼 수 없는 상황, 모든 커넥션이 단절되는 순간이야말로 가장 인간적이고 현대적인 순간이 아닐까?
공공 와이파이가 거의 끊김 없이 연결되는 한국에서는 그건 좀 불편할 뿐인 상황이지만, 그러나 현대(한국)인에게 이 단절은 불편을 넘어 고립과 단절, 위기의 표상처럼 느껴진다. 일상과 관계망에서 퇴출을 선고받는 순간, 쫓아오는 것은 사자보다 무서운 체납고지서 아니 주위의 평판과 자격지심이리라. 압박감은 쫓아오는 사자보다 크다.
너 왜 연락이 안 되니?
불편한 건 이웃들이다. 사실 전화벨과 메시지 알람이 울리지 않으면 일종에 해방감 같은 것을 느끼기도 하지만 문제는 처지겠지. 휴대폰 요금도 낼 수 없는 처지. 가젤의 처지와 사람의 처지가 어떻게 다를까? 사자에 쫓기는 가젤은 그 순간 가장 가젤답다는데, 추심에 쫓기는 인간은 과연 가장 인간다운가?
센세는 나이 마흔에 첫 장편 애니메이션을 내놓았으나 아무도 보러 오지 않았다고 한다. 이 대가 역시 데뷔는 실패였다. 쫓기지 않는 존재는 없다. 생은 시간에 쫓기고 노화에 쫓긴다. 그래서 일상은 언제나 팽팽해야 한다. 쫓기는 것이 인생의 본질이라면 느슨해서야 결국 붙들리지 않겠는가. 사자에게, 공포에게.
죽음은 순간이고 고통은 영원하지 않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인생도 시간도 청춘도 오늘도 역시, 지나간다. 그러므로 쫓기는 이들은 아직 살아있는 이들이다. 잠식되고 잡아먹힌 생명은 쫓기지 않는다.

"요즘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줄이고 즐겁고 평화롭게 살라고 해요. 하지만 항상 그렇게 살 수는 없어요. 가끔은 자기 능력을 120%로 발휘해야 하는 때가 있죠. 그런 순간이 없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어요."
시대의 풍속이 자꾸 위험을 제거하려고만 한다고 센세는 안타까워했다. 120%는 위험에 직면했을 때에만 드러난다. 100%는 이제 기계도 한다. 자, 잠든 120%, 200%를 끌어올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목숨 걸고 뛰는 순간은 언제 찾아오는가? 아니 찾아가야지. 목숨 걸고 뛰는 순간을 찾아다녀야지. 그래야 인생을 120%, 200%로 살지 않겠는가.
그건 내 생각이다. 인생 120%? 뭐 할라고? 적당히 살다 가려면 인생 반만해도 충분하지 않겠는가, 그때 뙁! 하고 덤불에서 사자가 등장하는 거야. 느닷없이 재앙이 몰아닥치는 거야. 인생이 그리 호락호락하더냐. 초목의 평원도 그러할진대, 이놈의 롤러코스터 팔자에는 평지가 없는 거지. 오르던지 내리던지.
뙁! 하고 등장한 사자는 120%를 다하지 않겠나. 지도 먹어야 사는데. 도망치는 놈은 여럿이고 쫓는 놈은 한 놈이니 인생사 피곤하긴 매한가지. 해도 달도 쉬는 날 없이 떴다 지는데 인간은 뭐라고 무사태평하겠는가. 그리하여 달리는 인간은 가젤처럼 사자에 쫓겨야 한다. 젖 먹던 힘까지 끌어내 달리려면 휴대폰 끊기는 일쯤이야. 아니 사자처럼 찾아다녀야지. 먹이를 찾아. 얌전히 늘어나는 통장 숫자도 인플레이션 덩굴에 조용히 잠식되는데 어디라고 안전할까? 남들처럼 사는 인생은 가젤처럼 달리는 인생이란다. 다들 이런저런 이유로 달리고 있으니까.
그러나 역시 인류의 맛은 연대와 협력이 아닐까? 인간이 가장 인간다울 때는 대자연의 재앙에 맞서 댐을 짓고 바다를 개간하며 방벽을 세우는, 어깨를 걸고 맘모스에게 돌도끼를 던지는 연대와 협력의 본성이 드러날 때 아닌가. 사회적 동물, 인간 말이다. 그 길로 길을 달려 인간은 자연을 정복했고, 공포이자 신적 존재였던 자연은 이제 인간에 맞서 대자연의 연대와 협력을 이끌어내야 할 위기에 봉착한 듯 하지만, 어차피 모두 홍수 한 방이면 끝날 것을.

이것은 하야오 센세의 주제의식이기도 하다. 이분법적인 선악 구분 없이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이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센세. 그리고 묻는 것이지.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그러면 나는 휴대폰 끊길 공포에 떨며 가젤처럼 초원을 도망 다니느니, 굶주린 사자가 되어 먹이를 찾아 파산을 반복하겠다고, 새로운 땅과 하늘을 찾아 우주로 나아가겠다고, 이륙 즉시 기체 결함으로 폭발할지언정, 톰 소령처럼 우주미아가 될 지언정, 그러다 휴대폰이 끊겨 연대와 협력의 연결에서 끊어지더라도 편지를 병에 담아 대양에 던져넣는 일만큼은 멈추지 않겠다고 (글 한 편을 포스팅하는 일을 멈추지 않겠다고), 정신과 신념을 공유할 동지들을 찾아 우주에 신호를 보내는 일만큼은 쉬지 않겠다 다짐하며 (초고속 통신 국가를 건설한 선조들에게 감사하며), 다시 너에게 묻는 것이다. 그대들은 어떻게 쓸 것인가?
너 왜 글 안 쓰니?
어차피 홍수 한방이면 인간도, 사자도, 가젤도, 물귀신이 되고 말 텐데, 우리는 누구와 싸우며 누구와 어깨를 걸어야 할까? 그것은 행방불명이 된 센과 치히로가 돌아오거든 물어보도록 하고, 우리는 우주를 향해 나아가자. 별들을 여행하는 미래소년들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위즈덤 레이스 + Movie100] 103. 미야자키 하야오: 자연의 영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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