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100] We Are All Made Of Stars
잔스카르의 시작을 알리는 녜락 마을을 지나자 창 밖으로 지금까지 봐온 것과는 완전히 다른 모양과 색깔의 산세가 펼쳐졌다. 잔스카르의 산과 하늘, 강과 들판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글로 설명하려고 하니 완전한 무력감이 느껴진다. 날 것의 자연이 주는 충격을 글자로 표현하는 일은 늘 막막하다. 도무지 글을 쓸 수 없는(아니 어쩌면 글을 쓰지 않는) 몸과 마음이 된 지 꽤 오래되기도 했다. 이 무력감이 종종 아쉽게 느껴지기는 해도 나름 즐겁게 몸과 마음의 변형을 받아들이고 있다.
아무튼... 본론으로 돌아가서. 고생길이 되리라는 걸 출발 전부터 예상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막 뚫고 넓히고 다듬기 시작한 도로는 생각보다 더 처참한 수준이었다. 올 때마다 길이 좋아져서 잔스카르까지 걸리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싱게는 말했지만, 잊을 만 하면 다시 나타나는 비포장 도로 위에서는 잠깐 눈 붙일 여유도 허락되지 않았고, 창문을 닫아도 막을 수 없는 흙먼지의 습격, 잔스카르 땅을 마침내 밟았다는 기쁨, 육체적 고통을 이겨내려는 셀프 각성으로 우리는 평소보다 좀 더 미친 상태였다. 마치 매드맥스의 워보이들 같았달까...
잔스카르의 주도 파둠에서의 첫째 날 밤은 싱게의 친구가 운영하는 리조트에서 머물렀다. 천막 형태의 숙소에서 여러 번 묵어 보았지만, 유난히 아름다운 뷰, 유난히 깔끔하고 편안한 침구, 유난히 맛있는 저녁 식사, 라다크 오지 여행에서 기대하기 힘든 '핫 샤워'까지, 흔들리는 차 안에서 몇 시간 탈탈 털리고 난 육체에 휴식을 선사하기에 어느 곳 하나 나무랄 데 없는 완벽한 공간이었다.
밤이 찾아오고 모닥불 앞에 모여 앉았다. 맥주, 음악과 춤, 남은 여정에 대한 기대와 흥분이 담긴 대화로 분위기가 무르익어 갈 때쯤, 나는 테이블 위에 놓인 생수통 안에 담겨 있던 디젤을 삼켰다. 물인 줄 알았다. 목이 말랐기 때문에 첫 모금은 의심 없이 삼켰다. 디젤의 감촉은 부드럽고 향긋했다. 내 혀와 식도는 디젤을 거부하지 않았다. 주스가 아닐까 생각했다. 두 번째 모금에서 이것이 모닥불에 불을 지피기 위한 연료라는 걸 깨닫고는 입에 남은 디젤을 뱉어내고 바로 화장실로 뛰어갔다. 토하려고 노력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친구들이 달려와 몇 차례 등을 두드렸고, 나는 이내 구토를 포기했다. 친구들아 괜찮아. 디젤도 나도 너도 다 같은 별에서 탄생한 물질로 이루어졌으니 내 몸은 디젤을 받아들일거야. 걱정 말자. 취한 김에 내뱉은 말에 스탠진은 맞는 말이라며 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식도에서 풍겨 나오는 디젤 냄새에 취해 오히려 더 의기양양한 마음으로 친구들을 안심시키고는 잠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육체의 피로도, 여행지의 낭만도, 취기도 흥분도 모두 사그라든 상태의 내게 남은 건 디젤 냄새 뿐이었다. 젠젠이 챗지피티를 통해 알아낸 정보들은 온통 너무 무서운 이야기들이어서 모든 여행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그전에 흡인성 폐렴에 걸려 죽게 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별의 탄생 운운하던 지난밤의 패기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고, 겁에 질려 울 듯한 표정을 하고 있는 내게 싱게는 "야... 나도 몇 번 마셔봤는데 아무 일도 안 일어나. 주유소나 정비소에서 일하는 라다크 사람들은 일주일에 두 번은 마실 걸. 디젤을 마셨으니 너도 이제 진정한 라다크인..." 이라며 위로를 건넸다. 그 말에 실제로 안심이 되었기 때문에 진짜든 거짓이든 중요하지 않았다. 젠젠은 나를 보고 오늘 유난히 예뻐 보인다고 했다. 나는 어젯밤 디젤을 마셨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내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반나절이 지나자 내 몸에서 디젤은 사라졌다.
변형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 말이야. 변형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