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ty 100] 이상한 날의 어떤 인연

in Wisdom Race 위즈덤 레이스25 days ago

그 날은 이상한 날이었다. 나쁜 쪽이 아닌 좋은 쪽으로. 피터의 귀국일이 코 앞으로 다가왔기에 돌핀 호텔에서 나와 레로 가야만했다. 마침 이웃 주민인 오짤의 어머니가 샤카 린포체의 티칭을 들으러 칼치를 가고 포르카스가 그 차를 운전한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칼치는 꽤 큰 도시라 레로 가는 버스가 분명히 있을터였다. 택시비를 아낄 요량으로 우리는 함께 가기로 했다. 아침 일찍 짐을 챙기고 차를 타러 나온 우린 대기하고 있는 인원에 기함했다. 하나, 둘, 셋…아홉, 열. 우리 셋 포함 총 열명이었다. 차는 고작 한대 뿐인데. 고령의 할머니들을 좌석에 태우고 남자들과 우리 셋은 자연스레 화물칸에 탔다. 5명이 타기에 조금 좁았지만 어찌어찌 낑겨서 앉으니 충분히 가능했다. 고불고불한 길을 따라 움직이는 차가 덜컹거릴 때 마다 몸도 붕떴다 내려왔다를 반복했다. 안전 장치도 창문도 없는 화물칸에서 보는 울레 풍경이 어찌나 가깝고 선명하고 생동감 넘치는지. 날개를 달고 낮고 빠르게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20여분을 달리다 갑자기 멈춘 차는 경적을 연달아 울렸다. 울레 가장 꼭대기에 사는 아저씨가 밭일을 하다가 합류하기로 했다고. 보이지도 않을 만큼 까마득히 멀리있는 아저씨는 발걸음을 재촉해 뛰어오며 점이 되었다가 사람 형상이 되어 화물칸에 올랐다. 이제 화물칸 인원은 총 6명. 6명은 얼기설기 뒤엉켜 1시간도 넘는 긴 시간을 도로 위에서 버텼다. 겉으로 언뜻 보기엔 안정적인 모습이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깔리고 뭉개지고 접히고 밟히고 하여튼간 엉망진창이었다. 나는 뒤를 보면서 거꾸로 가는 자세로 고정된 탓에 올라오는 멀미와 트름을 참지 못해 한참을 꺽꺽거렸다. 그러던 중 갑자기 차가 섰다. 탐스런 살구 나무를 보고 세운 것 같았다. 살구 나무가 없는 울레에 사는 주민들은 우루루 차에서 내려 마음을 모아 헤미스 슉바찬에서 살구를 서리했다. 맛깔스러운 모양새만큼 맛이 엄청 좋지는 않았다. 피터의 컨디션도 좋지 않은데다 샤카 린포체 티칭을 가는 자동차 행렬이 끔찍하게 길어서 우리는 칼치에서 바로 버스를 타고 레로 가기로 했다. 버스터미널 근처의 식당에서 한숨 돌리며 버스 시간표를 물었다. 한시 반, 다섯시에 버스가 있지만 린포체가 오셔서 운행 여부를 알 수 없다 했다. 식당 사람들은 친절하게 몇 번이나 버스 유무를 확인하고 업데이트된 정보를 알려줬다. 하지만 100% 확실한 정보가 우리 손에 쥐어지진 않았다. 지나가는 차도 없고 인원도 많아서 히치하이킹도 쉽지 않을 터 였다.

“시간도 많은데 우선 샤카 린포체 티칭을 같이 가는 건 어때?“

가장 빠른 버스가 제 시간에 운행된다 해도 네시간도 넘게 기다려야 했기에 우리는 식당 사장의 제안에 순순히 응했다. 차를 타고 내려가는 길목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걸 놓칠 수 없는 약삭 빠른 장사치들의 노점상으로 붐볐다. 아이스크림부터 매운 양념을 묻힌 회오리 감자에 뭐에 온갖 주전부리들과 기념품이 가득했다. 땡볕에 앉아야 했지만 견딜만했고 린포체의 티칭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수백명의 군중이 내뿜는 신실한 기운은 맑고 따뜻했다. 사람들이 나눠주는 빵과 짬빠를 동그랗게 뭉쳐 빨갛게 칠한 걸 먹었고 빨간 실과 린포체의 사진도 받았다. 뻔하지만 특별한 시간이었다. 우리를 티칭에 데려다준 식당 사장의 이름은 도르제였다. 다시 차를 타고 그의 식당으로 돌아온 우리는 그곳에서 점심을 먹고도 한참이나 버스를 기다렸지만 버스는 오지 않았다.

“오늘 레에 볼일이 있으니 내가 데려다줄게.”

도르제는 불안감에서 허우적거리는 우리를 말 한마디로 건져주었다. 그야말로 은인이었다. 칼치에 도착한지 7시간 만에 우리는 레로 갈 수 있었다. 춘자와 나는 보통 처음 보는 사람에게 우리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는 걸 꺼려하고 제한된 정보만을 말하는 편이다. 이런 속사정도 모르는 피터는 차 안에서 대뜸 도르제에게 천진난만하게 말한다.

“저 친구들 라다크에서 카페 했었어.”
“정말? 어디에서?”
“잔스티 파킹 알지? 거기 뒤에 오래된 전통 집 있잖아. 거기 였어.”

이미 발화되어 엎어진 말에서 도망칠 수 없어 순순히 묻는 말에 답을 하는데 상상도 하지 못한 말이 되돌아 온다.

“어, 나 거기 가봤는데.”
“뭐라고???? 진짜야????”
“응. 자주는 아니고 친구랑 딱 한 번 가본 적 있어.”

도르제는 카페 두레의 손님이었다. 3년 동안 여름부터 가을까지 4~5개월을 운영했으니 짧은 시간은 아니라 가끔 레 시내를 지나다보면 카페에 가봤다며 아는 척 하는 사람들이 왕왕 있었다. 그렇지만 평범하게 택시를 탔다면 절대 오지 않았을 칼치에서, 린포체가 티칭을 하지 않았다면 무사히 버스를 탔을 칼치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종일 도움을 준 사람이, 레도 아닌 칼치에 자리 잡고 사는 사람이, 우리 카페 손님이었다는 사실은 단순히 놀라운 정도를 넘어 소스라치게 놀랄 일이었다. 흥분을 가라 앉히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는 우리 목소리 뒤로 도르제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 때 내가 니네 카페에서 쓴 돈을 이번에 내 가게에서 돌려받은 격이네.”

충분히 즐거웠던 예상치 못한 모험은 예기치 못한 인연으로 오롯이 벅차오르는 순간까지 선물했다. 도르제는 우리를 빨루 게스트하우스 앞까지 데려다줬고 그로 인해 우리 가족과도 같은 빨루의 큰아들 타니와 그가 같은 학교를 다닌 친구라는 사실까지 알게 되었다. 우주의 힘이 거부할 수 없는 인연의 실들을 한꺼 번에 당겨 오늘의 만남을 이끈걸까?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정말 믿기지 않을 만큼 이상하고 미치도록 놀라운 일인 건 만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