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ty 100] 여름, 푸른 맛의 라다크

in Wisdom Race 위즈덤 레이스4 day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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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렸던 하늘이 개면서 한껏 가라 앉았던 마음도 같이 맑아졌다. 마음은 태양의 일조량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을까? 절벽 길을 넓히겠다고 폭탄을 터트린 탓에 먼지 바람이 회오리처럼 몰아쳤고 그자리에 쏟아진 돌무더기로 길이 막혔다. 언제 길이 뚫릴지 모르는 상황에서 주위를 둘러보다 졸졸 흐르는 작은 계곡을 발견했다. 산 위에서 내려오는 빙하 녹은 물은 이가 시리도록 차가웠고 우리는 물을 튕기며 놀았다. 아래로 떨어지는 작은 폭포에 머리를 들이미니 머리통이 얼얼했다. 차가운 물에 머리를 담그니 눈이 번쩍 뜨이고 정신이 또렷해진다. 머릿 속 안개가 걷히고 흐리멍텅했던 정신이 명료해진다. 똘망똘망한 눈으로 도착한 사니 곰빠는 고요했고 고즈넉했다. 1,000년은 된 스투파를 한바퀴 돌고 들어간 작은 방에는 역시 1,000년은 된 구루 린포체의 상과 그의 여덟가지 현현을 보며 눈을 감고 오래도록 자리를 지켰다. 곰빠 밖에는 동네 어르신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다.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된 사실은 세상을 구하는 건 귀여운 거고 그 귀여움의 범주는 세가지 라는 것. 어리거나 늙거나 동물이거나. 나는 특히나 주름이 자글진 라다키 할아버지의 우렁찬 줄레를, 털모자를 쓰고 어리둥절한듯 수줍게 내미는 라다키 할머니의 앙증맞은 혀를, 마니차를 돌리며 빠진 이빨 따위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 라다크 노인의 무해한 웃음을 사랑한다. 거대한 나뭇의 잎 사이에 사방으로 뻗어 십자가를 이룬 빛이 오랫동안 기다렸던 그리운 순간처럼 반짝이고 우리는 스스럼없이 황금 들판의 완두콩을 따서 입 안 한가득 넣는다. 푸른 내, 푸른 맛, 푸른 색이 내 안에서 범람한다. 라다크는 나의 여름이다. 내 모든 것이고 내 꿈이다. 잔스카르로 내 여름의 크기가 부쩍 커졌다. 내 여름은 매년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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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