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ty 100] 라다크 환상 동화

in Wisdom Race 위즈덤 레이스2 days ago

잔스카르에서 레로 돌아가기 전 날, 싱게는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 두가지가 있어. 뭘 먼저 들을래? 우리는 모두 짠듯이 나쁜 소식을 먼저 골랐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는 속담에 집단 가스라이팅 당한건지 모르겠지만 희망 뒤 절망보다는 절망 뒤 희망을 우리는 선호했다. 잔스카르에서 레로 돌아가는 지름길이 폭탄을 터트리며 길을 넓히고 있어서 막혀있어. 내일 뚫릴지 아님 모레 뚫릴지 몰라. 그럼, 좋은 소식은 뭐야? 오늘 저녁 메뉴에 치킨이 있대. 그거, 좋은 소식이기는 하네. 내일이 되어서도 어찌될지 모르는 일을 미리 걱정하지 않고 우리는 치킨을 뜯고, 노래를 부르고, 맥주를 마시고, 춤을 췄다. 다음 날, 출처는 있지만 진위여부를 모를 정보들이 봇물처럼 쏟아졌고 막힌 길은 5일 뒤에야 열린다는 소식이 싱게의 경찰 친구를 통해 전달되었다. 방법은 단 하나였다. 까길을 통해 오래 걸리지만 돌아돌아 가는 것. 문제는 까길에서 레 택시를 운행하는 것이 불법이라 차칫하면 걸려서 큰 봉변을 당할 수 있다는 거였다. 아 몰랑 될대로 되라지~인생은 짧아, 즐겨~ 그저 흐름에 몸을 맡겨~같은 문장을 좌우명처럼 반복해서 말하는 싱게의 천성은 게으름이 되어 우리를 늘 괴롭혔지만, 이럴 때 만큼은 그 느긋함이 든든하다. 5시간 거리를 3배 넘게 15시간 돌아가며 우리에겐 다양한 선물이 실시간으로 쏟아졌다. 가장 먼저는 결혼식을 가는 소녀가 들고가던 잔스카르 창. 걸어가는 소녀를 불러 세워 페트병에 서너잔 나올 양을 받았다. 두번 째로는 감자칩. 갑자기 불어난 이동 시간에 우리에겐 미리 사놓은 간식도 없었다. 전 날 산 감자칩은 양파맛이라 대부분 먹지 않겠다고 고개를 저었고 역시 감자칩은 오리지널, 노란색 봉지가 맛있다는 말을 하고 5분이 지났을까? 도로에 노란색 감자칩이 수십개가 뒹굴고 있었다. 마치 감자칩 비라도 내렸다는 듯. 감자칩을 줍던 아저씨는 우리에게 한아름 안겼고 우리도 나가 감자칩을 주웠다. 야크 버터를 사겠다며 헤짚고 다닌 싱게와 초모 덕에 귀여운 할머니 할아버지와 손주를 만나 사진을 찍고 보리를 볶은 뻥튀기를 받았고 소 젖짜는 장면을 보며 어제 갓 태어난 소를 만났다. 신선한 커드를, 치즈를, 말린 치즈도 먹었다. 연쇄적으로 이어진 모든 장면은 아이템을 하나씩 먹으며 퀘스트를 깨는 게임 같기도, 최고의 야크 버터를 찾는 로드 무비 같기도 했다. 열 다섯시간이나 이어진 긴 여정은 며칠은 쉬어도 풀리지 않는 지독한 여독를 안겨줬지만, 까길로 돌아가지 않았으면 만나지 못했을, 그 누구도 훼손할 수 없는 어떠한 장면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