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노병의 이야기(16)
<세계전투사를 바꾼 6.25 춘천전투 3일(15)>
나는 씨스 파이아! 사격 끝을 명령했다. "전과(戰果)다" 북한군은 미증유의 희생자가 발생 하였지만 아군은 단일명의 희생도 없다. 아측은 단 한건의 피해부상도 없다. 나는 적의 CP(본부), OP(관측소) 위치를 알면서도 쏘지 않았다. 민가 학교 등에 인민군이 집결소를 들랑날랑 하고 있음을 빤히 보면서도 쏘지 않았다. 우리 농민의 사상 파손피해 손상우려 때문에 쏘지 않았다. 인민군의 비참한 상태를 더더욱 무참, 잔인한 것 보다 저들 불공자파(不攻自破)하고 있기 때문이다. 12시 30분에 사격을 중지했다. 이때를 찬스로 아군 보병이 돌격 했더라면 전쟁양상이 달라질 수 도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났었다.
이러한 전투 상황에 아군지역 어디 던지 외양간이나 달구지 등 도로 무엇이든 부서지거나 망가진 것도 없다. 군인이던 민간인이던 다친 사람도 없다. 모두 정상이다. 물자 손실도 없다. 춘천시민은 여유있게 피난할 수 있었다. 관측장교 심호은 소위는 인민군 제2사단 병력 피해는 3,000여명이라 보고했다.
하지만 조용한 세월을 보낸 "50년 후" 혼미 파란이 일어났다.
김일성이 소련 스탈린에게 사단병력 49% 사상으로 전멸하였으며 3일간의 재편성 수습 시간 등을 소요했다는 어록이 파문이 일어났다. 남한의 보병이 아닌 그것도 포병사격에 의하여 사상희생을 입었다고 하는 김일성의 육성이다. 소련의 가증한 외교문서가 입증하고 있으며 50주년 보도(참조 : KBS CD에서 볼 수 있다. 또한 일본 서적에서 볼 수 있다.)
김일성이가 말하는 49%의 희생숫자는 북한군의 사단병력은 편제 규모에 따라서 그 희생수는 어마어마하게 달라질 수 있다. 참고로 북한군 사단병력은 11,500명이라고 한다. (後聞으로) 인민군의 기습 선제공격인데 희생 피해가 있어도 사단예비 연대로 커버할 수 있는 텐데 사상병 운반에 동원된 듯 했다. 홍천을 공격 중인 인민군 제12사단을 화급히 빼서 되 막으려는데 도로사정과 기동력, 차 등의 부족으로 엄청한 시간적 소요 재편성 등 소요시간이 걸린 3일간의 전투중단이란 일방적 생각으론 이해하기 어렵다. 전쟁의 원리상으로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