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booksteem]거시적 시선으로 인간 이해하기 8/26 유럽이 앞서간 이유
해갔다. 그 때문에 석상들이 돌판에 쓰러지면서 파괴되었다. 제4장과 제5장에서 살펴보겠지만 아나사지 문명과 마야 문명에서도 그랬듯이 인구, 기념물의 건축, 환경의 충격이 궁극점에 이르면서 이스터 사회는 급속히 붕괴되기 시작했다. 유럽인들이 이스터 섬에 처음 상륙했을 때 붕괴가 어느 정도까지 진 행되었던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1722년 로헤벤은 이스터 섬의 한 지 역에 상륙해서 그곳만을 둘러보았을 뿐이다. 또한 1770년 곤잘레스가 지휘한 에스파냐의 탐험대도 항해일지에만 이스터 섬에 상륙했다는 기 록을 남겼을 뿐이다. 그런대로 읽을 만한 최초의 기록은 쿡 선장이 남 겼다. 1774년 이 섬에 상륙한 쿡 선장은 나흘을 머물면서 파견대를 보 내 내륙을 정찰했다. 그때 데려간 타히티인은 이스터 섬 사람들과 무리 없이 대화를 나누었다. 폴리네시아어가 이스터 섬 사람들의 언어와 무 척 흡사했기 때문이다. 쿡 선장은 석상들에 대한 기록도 남겼다. 쓰러 진 석상뿐만 아니라 여전히 똑바로 서 있는 석상도 목격했다는 기록이 었다. 그런데 똑바로 서 있는 석상에 대한 유럽인의 기록은 1838년에서 끝난다. 1868년의 기록에는 서 있는 석상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구 전에서도 파로가 1840년경에 마지막으로 쓰러졌다고 전해진다. 한 여 인이 남편을 기리면서 세웠다는 파로를 그녀 가족의 적들이 허리를 두 동강 내려고 쓰러뜨렸다는 것이다. 아후도 신성함을 상실했다. 사람들은 공들여 깎은 돌판들을 빼내 아 후 근처에 마련한 밭을 보호하는 담( '마나바이' )을 쌓았고, 시신을 안치 하는 석관묘를 만들기도 했다. 그 결과로 오늘날까지 복원되지 않은 채 버려진 아후는 그저 큰 돌을 쌓아놓은 것처럼 보일 뿐이다(대부분이 복 원되지 않았다). 조 앤 반 틸버그, 클라우디오 크리스티노, 소니아 아오 아, 배리 롤렛, 그리고 내게도 아후는 파괴된 석상에서 떨어진 돌조각 들과 뒤섞인 돌더미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아후를 쌓고, 석상을 조각해서 운반하고 세우기 위해서 수세기 동안 쏟아부은 엄청난 노력 2. 이스터 섬에 내린 땅거미 157
을 생각할 때, 그리고 조상의 그 기념비적인 작품을 파괴한 장본인이 바로 섬사람들 자신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때 우리는 서글픈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이스터 섬 사람들이 모아이를 쓰러뜨렸다! 공산정권이 붕괴하자 러 시아 사람들과 루마니아 사람들이 스탈린 동상과 차우세스쿠 동상을 쓰러뜨렸던 상황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러시아인들과 루마니아인들이 그랬듯이, 섬사람들도 지도자에 대한 울분을 오랫동안 억눌렀을 것이 다. 파로의 전설이 말해주듯이, 석상의 주인에게 앙심을 품은 사람들이 간헐적으로 석상을 하나씩 쓰러뜨렸을 것이다. 그리고 공산주의가 몰 락했을 때처럼 분노와 환멸이 전염병처럼 순식간에 번지면서 무수한 석상들이 쓰러졌을 것이다. 내게는 또 하나 기억나는 사건이 있다. 뉴기 니의 고원에 있는 보마이(Bomai)라는 마을에서 1965년에 있었던 종교 적 편견에 따른 문화적 비극이다. 보마이에 파견된 기독교 선교사가 내 게 자랑스레 해준 이야기였다. 어느 날 그는 회심자들을 불러 '이교도 의 인공물(즉 그들의 문화유산과 예술품)' 을 가설 활주로에 쌓아두고 불 태우라고 명령했다. 그들은 선교사의 말에 고분고분 따랐다. 이스터 섬 의 '마타토아' 도 그들의 추종자들에게 비슷한 명령을 내리지 않았을까. 그렇다고 1680년 이후 이스터 사회를 완전히 부정적이고 파괴적이었 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새로운 환경 과 종교에 적응해나갔다. 데이비드 스티드먼, 파트리시아 바르가스, 클 라우디오 크리스티노가 아나케나에서 발굴한 가장 오래된 패총에서는 동물의 뼈 중 닭뼈가 0.1퍼센트밖에 차지하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1650년 이후에 카니발리즘뿐만 아니라 닭장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고 여겨진 다. 마타토아는 과거에 이스터 사회의 수많은 신들 중 하나에 불과하던 마케마케(Makemake)를 창조주로 섬기는 새로운 종교를 내세우면서 그들의 쿠데타를 합리화시켰다. 바닷새들이 둥지를 튼 앞바다의 커다 란 세 섬이 굽어 보이는 라노카우 분화구 언저리에 있는 오롱고 마을이 158 문명의 붕괴
제식의 중심지였다. 새로운 종교하에서 새로운 예술 양식이 발달했다. 특히 암면(巖面) 조각이 성행하면서 여성의 성기, 조인(鳥人), 새 등이 오롱고의 기념물뿐만 아니라 여기저기에 쓰러진 마오이와 푸카오에 조 각되었다. 매년 오롱고에서 제식이 거행될 때마다 남자들은 이스터 섬 에서 약 1.5킬로미터 떨어진 앞바다의 작은 섬들까지 상어들과 싸우면 서 건너가, 검은제비갈매기가 그 해에 낳은 첫 알을 구해서 고스란히 이스터 섬까지 가져오는 경기를 벌였다. 그리고 승리자에게는 '올해의 조인' 이란 명예가 주어졌고 그는 다음 한 해 동안 그 명예를 누릴 수 있었다. 오롱고에서 마지막 제식은 1867년에 있었다. 가톨릭 선교사들 의 눈에 띄었던 탓일까? 섬사람들의 손에 파괴되지 않은 이스터 섬의 고유한 전통들은 외부 세계의 압력으로 인해 파괴되는 운명을 맞았다. 유럽인들과 해석 유럽인들이 이스터 섬 사람들에게 안겨준 슬픈 이야기는 짤막하게 요약될 수 있다. 쿡 선장이 1774년 잠시 머문 후부터 유럽인들의 발길 이 끊이지 않았다. 하와이, 피지 등 태평양의 많은 섬들에 대한 기록에 서 보듯이 그들은 유럽의 질병들까지 이스터 섬에 안겨주었고, 그런 질 병들에 대해 면역성이 전혀 없던 섬사람들은 속수무책으로 죽어갔다. 구체적으로 언급된 최초의 전염병은 1836년경의 천연두였다. 또한 태 평양 일대의 다른 섬들에서도 그랬듯이, 섬사람들을 노예로 납치하는 만행은 이스터 섬에서 1805년에 처음 자행되었고, 1862~1863년에 절 정을 이루었다. 그 해는 이스터 섬의 역사에서 가장 불행한 시기였다. 페루인들이 20여 척의 선박을 몰고 와 1,500명(살아남은 사람의 절반)을 강제로 납치해서, 페루의 조분석(烏糞石, guano) 채취장이나 다른 노역 장에서 일할 노예로 팔아넘겼다. 이때 납치당한 사람들은 대부분 노역 중에 죽었다. 국제 사회의 압력 아래 페루 정부는 10여 명의 생존자를 이스터 섬으로 송환시켰지만 그들이 섬에 다시 한 번 천연두의 비극을 2. 이스터 섬에 내린 땅거미 159
상에서 유일한 인간이라 믿었을 사람들에게는 기대하기 힘든 반응이었 다. 그러나 1722년 이전에 유럽인들이 이스터 섬에 상륙했다는 분명한 증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어떤 식으로 삼림을 파괴했는지도 학 실하지 않다. 마젤란이 1521년 태평양을 최초로 횡단하기 전부터 이스 터 섬에서 인간으로 인한 파괴가 자행되었다는 증거는 곳곳에서 찾아 진다. 즉 1300년 이전에 모든 육지새가 멸종했고, 돌고래와 참치가 식 단에서 사라졌으며, 플렌리가 확인해주었듯이 퇴적물에서 나무의 화분 들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또한 포이케 반도의 숲은 1400년경에 완전히 파괴되었고, 야자나무 열매는 1500년 이후로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두 번째 반론은 삼림 파괴가 가뭄이나 엘리뇨 등과 같은 기후 변화에 서 비롯되었을 것이라는 이론이다. 아나사지(제4장), 마야(제5장), 노르 웨이령 그린란드(제7~8장)에서 기후 변화가 인간으로 인한 환경 훼손 을 더욱 가속화시킨다는 사실을 살펴보겠지만 기후 변화가 이스터 섬 에 일정한 영향을 미쳤다면 이런 반론도 설득력을 갖는다. 그러나 이스 터 섬과 관련된 기간인 900년부터 1700년까지의 기후 변화에 대한 정 보는 거의 없는 편이다. 따라서 일부 학자들이 주장하듯이 기후가 더 건조해고 폭우가 잦아지면서 삼림의 생존에 불리했는지, 거꾸로 더 습 해지고 폭우가 줄어들면서 삼림의 생존에 더 유리하게 변했는지 판단 할 자료가 부족하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기후 변화만으로 삼림이 파괴 되고 새가 멸종되었다고 설명하기에는 설득력이 부족한 듯하다. 테레 바카 화산의 용암류(lava flow)에 문힌 야자나무 줄기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거대한 야자나무는 이스터 섬에서 수십만 년 전부터 살았고, 플 렌리는 퇴적물을 분석해서 야자나무, 나무 데이지, 토로미로 이외에 대 여섯 종의 수종이 이스터 섬에서 3만 8,000~21만 년 전부터 존재한 것 을 밝혀냈다. 따라서 이스터 섬의 식물들은 수많은 가뭄과 엘리뇨를 끗 끗하게 이겨냈기 때문에, 인간이 그 섬에 정착한 이후에 우연의 일치인 양 이런 토종 나무들이 가뭄과 엘리뇨를 견디지 못하고 한꺼번에 사라 162 문명의 붕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