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시-6시

in #kr-diary5 days ago

새벽 3시에 잠들고 새벽6시에 눈이 뜨면서 새벽부터 갑자기 답없는 철학적/종교적 질문이 계속 머릿속에 들어와 나를 곤란하게 만드는 그런 날이었다. 컨디션도 회복할 겸 이번 주말은 아무런 생각 없이 그냥 밥 잘 먹고 누워서 영화 youtube나 보면서 졸다가 일어나다 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머릿속에 박힌 시간과 근원에 대한 질문들은 나를 또다시 공포에 빠트렸다.

시간은 정말 어떻게 보면 정말 안 흐르는 것 처럼 보이면서도, 또 어떻게 보면 금방 지나가는 것 처럼 보인다. 과거의 추억들에 비교해서 현재의 시간을 비교하면 금방 간 것 같아 보이면서도, 또 최근의 일들과 앞으로의 일들을 비교하면 아직 시간적 여유가 많은 것처럼 느껴진다. 심리학적 효과로 봐야 할 것인가, 아니면 이것도 상대론의 관점에서 봐야 할 것인가, 절대적 관측자의 관점에서의 시간이란 것이 정말 유의미한 것인가, 시간과 관측에 대한 기원으로 부터 시작해서 결국 존재와 비존재에 대한 생각까지 확장되며, 나의 사고는 보다 더 불안과 공포에 휩싸이게 되어버렸다.

한 3시간 가까이 누워서 눈뜬 밤을 지새고 있으니, 9시-10시부터는 그냥 차라리 이럴 바에는 최근 좀 보려고 수집했던 강의 영상들을 좀 보자란 생각으로, fundamental 관련된 것들만 계속 생각하고 다른 과학, 수학 문제로 나의 시야를 옮겼다.

나름 짬밥이 생겼다고 느겼고, 나같은 사람은 기본적인 거라고 생각하며 소홀히하는 주제에 대한 벨기에 대학의 강의는(대학원생용인지 학부생용인지 모르겠으나 내용을 보면 아마 대학원생용이 아닐까 싶다) 분명 용어들은 내가 안다고 자부할 수 있는 것들인데 내용은 내가 알던 분야의 형태가 아니었다.

강사는 완전히 한 토픽 한 토픽을 처음 원 논문으로 시작해서 내가 평소에 이해하는 것과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 하는데 이게 막 교과서 처럼 진행하는게 아니라 그런지, 그리고 관련 주제들에 대한 좀 comprehensive한 review 논문이나 책 같은걸 찾아보려고 하는데 그 책들은 또 완전 다른 언어로 딴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난감한 상황들이 계속 등장했다. 그래도 강사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알겠어서, 빠르게 절반정도 내용을 따라갔는데 작년에 좀 보던 내용들이 갑자기 또 등장해서 친숙하긴 했다.

결국 기하학처럼 다들 자기가 원하는 용어, 정의, 표현 이런 식으로 자기네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전개하다보니 따라가는 입장에서 (무엇을 먼저 접했는가에 따라) 다른 표현들이랑 친숙해지고 이해하는데 시간이 더 필요한 듯 싶다. 뭔가 통일된 방식이 필요한데, 워낙 소수고 또 살아남은 사람들이 적다보니 자기네들 쓰던대로 계속 논문을 쓰게 되고 이로써 그쪽 학파가 아닌 새로운 사람들이 이런 일들을 해보려고 할 때 (나처럼) 개고생을 해야 되나 싶다.

가시적인, 단기적인 일들이 아닌 보다 깊은 이해를 위해 이런저런 것들을 하고 있는 거긴 한데, 솔직히 일적인 면에서 보면 이런게 과연 도움이 될까 싶다가도, 이런 깊이 있는 고찰이 없이 그냥 실적이 되는 일만 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봤을 때 덧없는 일이 아닌가 싶어, 공부와 연구, 그리고 근원,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는 과정에 대해 이런저런 고민에 빠진다. 그냥 어쩔 땐 이런거 다 잊어먹고 편하게 살까 싶다가도, 답 없는 문제들에 대한 고민과 나름의 만족스러운 추론 과정을 거쳤을 때 얻게 되는 그 깨달음의 기쁨이 잊혀지지 않아 계속 이런 일을 하고 있는게 아닌가 나를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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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분야의 일과 공부를 병행하시는군요. 멋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