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재 사례는 포교활동을 오래 한 사람이 아닐까 추측이 됩니다. 그들이 세뇌 받은 목적은 더 많은 신자를 끌어오는 것이고 논리적인 배틀을 하기보다는 자신의 믿음을 조롱하는 사람을 무시하고 다음 타깃을 노리는 게 더 효율적이라고 판단했을 수 있겠네요. 저는 오히려 믿음이 깊은 광신도이기 때문에 그런 행동이 가능하지 않았나 추측해 보게 됩니다.
두 번째 사례에서 화내는 신도를 말리던 다른 신도 역시 저 첫 번째 사례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어요. 믿음의 뿌리가 깊을수록 더 효율적으로 더 많은 대상에게 포교를 하는 것이 제1의 과제로 남게 되지 않을까 합니다. 일일이 화 내고 논리적인 싸움을 하는 것보다 합리적이라 여겨지고요. 전도의 과정에서 논리 싸움이 백해무익하다는 것을 그들도 아마 경험을 통해 배우지 않았을까 싶네요.
광신적인 믿음과 합리적인 판단이 공존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 떠오르셨던 것 같아요. 합리성의 정의를 자신의 목적(더 많은 사람에게 포교)을 성취하기 위해 목적 성취에 도움이 되지 않는 행위를 억제하려는 태도라고 좁게 본다면 광신도들도 충분히 합리적인 면이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다만 합리성의 정의를 자신의 신념이나 믿음과 배치되는 팩트를 접했을 때 그것을 받아들여 자신의 신념이나 믿음을 변화시킬 수 있는 인지적 유연성이라고 정의내린다면, 광신적인 믿음과 합리성은 양립할 수가 없을 것 같고요.
끝으로 사이비 종교와 순수한 종교를 판가름하는 리트머스는 그 종교로 인해 종교원의 삶뿐만 아니라 종교와는 무관한 사회 전체의 안녕이 향상되는가 여부인 것 같아요. 사회의 안녕에는 1도 관심이 없고 교단 확장에만 치중하는 일부 개신교 교회는 이런 면에서 사이비라고 봅니다 저는.
생각할 여지를 주는 글이네요.
말씀처럼 그들은 믿음의 뿌리가 깊기에 감정을 컨트롤 할 수 있었겠죠. 하지만 종교적 신념이, 교리에 대한 믿음보다 교세 확장에 대한 사명감으로 표출되는 것 자체가 순수한 종교적 신념이라기엔 크게 왜곡된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