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
사진: Unsplash의Marco Zoppi
어젯밤엔 잠들기 전 기도했다. '나는 안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원하는지 내 영혼이 가야 할 길은 어딘지 나는 안다.' 창조적 의욕도 열의도 흐름도 없이 멈춰버린 듯한 이 고요와 적막이 지극한 평온의 일환인지 어딘가 막혀버려 발생한 일시적인 정체인지 분간하기 점점 어려워졌다. 부정적인 감정이 드러나진 않았지만 계속 자고 싶었다. 불만은 없었지만 무얼 하고 싶다는 생각이나 충동이 하나도 없는 건 이상했다.
이젠 정말로 더 이상 원하는 게 없는 거야? 며칠 동안 물었지만, 답이 없었다. 사랑과 창조가 범람하는 충만한 그 상태를 좋아하긴 하지만, 그 상태가 아니더라도 나는 나였다. 여전히 살고, 여전히 존재하고, 판단하거나 고쳐야 한다거나 일말의 죄책감도 없이 평온하기도 했다.
자면서 생각했다. 당장 이 밤에 눈을 감고 다시 일어날 수 없다면, 무엇을 후회할까? 신기하게도 후회할 게 없었다. 그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감사했다고 말하고 싶을 뿐이었다. 동시에 내가 말하지 않아도 모두 알고 있으리란 확신이 들었다. 두 달 전쯤 이번 생에 내가 캐낸 보석 같은 지혜들을 세상 어딘가에 꼭 남기고 싶은 열의가 가득했는데 요즘엔 전혀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무력하고 정체된 평화 같은 시간 속에서 발견한 건 애쓰지 않음이었다. 배움은 사라지지 않고 기억을 잊더라도 언제나 나와 함께할 것이다. 현실에 기록하지 않는다 해도 부서지거나 없었던 일이 되지 않는다. 그저 더하고 또 더하고 커질 뿐이니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기억 못 해도 내 영혼은 그 배움을 기록하고 다음으로 유유히 나아갈 것이다.
또한, 몇달 전과 비교하면 상당히 에너지가 저하된 내 자신을 바라보며 겸손을 배웠다.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깨달음조차 내가 잘나거나 성취해서 얻은 게 아니었다. 삶을 살며 자연스럽게 오고 나가고 나는 그저 투영되거나 빌려쓰는 것 뿐이다. 사랑은 내 것이 아니고 지혜도 내 것이 아니었다. 그것을 영원히 가질 수도 없었고,거기 영원히 머물 수도 없다. 손님처럼 언제든 오고,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 억지로 막거나 불러 세울 수 없었다. 인연뿐 아니라 지혜나 배움도 마찬가지였다.
가질 수도 없었고 사라질 수도 없었다. 그쯤 생각하니 글을 써야 한다는 의무적인 마음은 날아갔고, 애초에 내가 왜 글을 쓰고 싶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았다. 내가 어떤 메시지와 의도로 글을 쓰고 싶었지? 변화는 언제나 함께이니 강요하지 말고, 정말로 다른 걸 원한다면 그것을 할 것이고, 정말 내 영혼이 지금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면 그저 이 상태로 있어야겠다는 마음으로 기도했다.
그러자 옆에 누운 남편에게 말하고 싶어졌다. 내일이 없다면 지금 하고 싶은 건 표현이었다. 오늘 정말 수고했고 고맙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자는 동안 생생한 꿈을 꿨다. 고등학교 이후로 한 번도 보지 못한 친구를 닮은 사람이 나타나서 3개월 뒤엔 꼭 한국을 떠나 있으라고 신신당부했다.
아침에 일어나 정신을 차리고 곧 깨달았다. 이사를 온 이래로 미묘하게 내 상태가 변했다는 건 알았지만, 실체를 모르고 있었다. 이사 온 새 집을 감옥처럼 여기고 있었다. 충격적이었다. 집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내가 집을 감옥으로 상정했기에 여기서 계속 멈추는 경험과 기분을 느끼며 그곳을 감옥처럼 만들고 있었다. 처음 뜻하지 않게 몇 가지 사건이 발생했고 내가 불쾌하게 받아들이는 느낌과 자극이 새 집이라는 장소와 단단하게 연합이 되어버렸다. 마치 파블로프의 개처럼 고전적 조건화가 발생했다. 습기, 끈적끈적한 날씨, 오고 가는 낯선 사람들, 무질서, 불쑥불쑥 찾아오는 사람들, 정리되지 않은 짐과 빨리 해치워버려야 한다는 의무감, 몇 가지 원활하게 처리되지 않아 반복해야 했던 자잘한 일과. 초기에 집에서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경험을 너무나도 적게 했다.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사건들의 파편은 이 집을 감옥으로 형상화하기에 충분했다. 느낌은 나를 불쾌하게 했고 나는 그 느낌에 이유와 의미를 붙여야 했다. 실제로 나를 가둔 건 없고, 객관적인 시선에서 보자면 살짝 좁아지긴 했지만, 좀 더 쾌적하고 깨끗한 장소로 이동했고 이사는 좋은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집에 사는 이상 더 이상 자유로울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감옥에 갇혔기에 어디로도 갈 수 없고 내 인생은 이 집에 묶여서 끝난 것만 같은 느낌. 집을 무의식적 단계에서 감옥으로 형상화하자 진짜 집을 감옥처럼 만드는 경험이 시작되었다. 집의 장점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단점은 계속 발견되었다. 계속 귀찮은 일이 발생했다. 계속 피곤하고, 잠만 자고 싶었다. 어디에도 가고 싶지 않았고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았고 연결을 최소화하고 소식도 듣고 싶지 않았다. 삶을 멈추기 위해서 영혼이 좋아하는 일을 집에서 결코 하지 못하게 되었다. 현실적인 의무와 역할에 집중하고, 그것을 할 때마다 스트레스와 부정적인 감정을 다시 일으키며 집에 대한 상징을 공고히 하며 확인했다.
이 정도쯤 깨닫고 나서 놀라버렸다. 입버릇처럼 '이사 온 후로 좀 상태가 안 좋아졌어.'라고 남편에게 말하곤 했지만, 나조차도 그저 이사는 핑계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스스로 그런 조건화를 하고 그런 의미부여를 하고 있었는지 꿈에도 몰랐다. 그 부정적인 조건화와 마음으로 감옥을 짓는 행위를 과거에 이미 했고 그것의 정체를 밝혀내고 극복했음에도 또 다시 나는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반복하고 있었다.
내가 예민한 사람이란 사실을 자주 잊는다. 잠깐 현실적인 과제들을 처리하느라고 정신이 팔리고, 체력이 부족해서 나와의 대화를 잠시 멈춘 사이, 무의식은 사건을 처리하기 위해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새로운 관념을 만들어서 현실로 구체화했다. 내 현실엔 그리 극적인 사건이 필요하지 않다. 삶이 멈춘 것 같았는데 그 순간조차 늘 변화하는 중이었다. 거대한 환영을 짓고, 그 환영에 맞추어 살아간다. 내게 해주는 이야기를 너무도 쉬이 잘 믿어버리기에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늘 의식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이야기가 바뀌고 이야기의 주체가 내가 아닌 밖이 되어버리면 그 이야기를 따라가기도 해석하기도 벅차다.
집은 그저 집일 뿐이다. 그런 집을 감옥으로 만들었으니, 다른 곳으로 만들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제야 왜 그동안 남편이 얄밉게 느껴지고 요리가 거대한 벽처럼 느껴졌는지, 날씨가 좋은데도 도무지 산책할 기운이 나지 않았는지 음악을 듣지 않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는지 이해가 갔다.(집 안에 머무는 것도 싫었지만 나가는 건 더 싫어서 집 안에서 머물며 보냈다) 어젯밤 나의 기도가 이루어졌다. 나는 이제 안다.
집과 친해져야겠다. 영혼이 좋아할 만한 일, 사랑을 느낄만한 경험을 집에서 해야겠다. 집 안에서 사랑을 느껴야 한다. 새로운 조건화가 필요하다. 여기까지 떠올리고 개를 훈련시키는 훈련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새로운 집에 간식을 놓아두는).
산책을 하고 맛있는 김치볶음밥을 만들어 먹고 커피를 마시면서 빨강머리 앤을 읽다가 문득 창을 봤는데 오리 한 마리가 힘차게 하늘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청명한 바람과 산 그리고 아파트들. 그 순간 글을 쓰고 싶던 이유가 생각났다. 지금 여기까지 오도록 온 우주와 세상과 내 영혼은 나를 사랑하고 있다. 단지 그 사랑에 보답하고 그 사랑에 표현하고 싶었다. 그 마음이 빚어 나온 게 글이었다. 내가 세상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정성스러운 표현이 글이었다. 글을 쓰는 건 세상에게 우주에게 나에게 사랑한단 말과 같았다. 글은 세상을 향한 나의 러브레터였다.
이 환영 속에서 내가 하고 싶은 말도 듣고 싶은 말도 하나뿐이다. 사랑한단 말. 나도 사랑한단 말.
친구 닮은 이가 꿈에 나타나 이사가라고 했다고요?
가실 거에요? 아니죠?
마음의 평화를 찾으셨다니 다행입니다.
ㅋㅋㅋㅋ 앜ㅋ 자세히 적진 않았지만 이사를 가라는 뜻은 아니었어요. o_o
한결 편안해졌어요. 감사합니다.
힘차게 하늘을 가로지르고 있던 창밖의 오리가 한 말 혹시 들으셨나요?
크업 감동이에요.
들었답니다!! 저도 사랑한다고 말해주었지요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