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선문정로〉꿈/// 은발이 도미노처럼
120일 공부 속에서 받은 "천해여래"라는 이름.
그 이름을 품고 사유하던 중, 꿈에서 은발이 도미노처럼 번지는 장면을 보았다.
성숙과 안도감, 그리고 나의 선지식들을 돌아보는 기록등 최종본같다.
예전 같았으면 인연 있는 분을 확인받기 위해
촐랑거리며 선원에 달려갔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급한 마음으로 가면 결국 내 그릇만큼만 받아 올 뿐이다.
‘미륵불 수기도 받고,
상위자아는 원하는 것은 다 줄 테니~’ 했음에도
캐릭터는 힘이 약해서 꾸준히 한길로 갈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요구할 생각도 잊은체 기웃거렸을 뿐이다.
선원에 가서도 아마 캐릭터 잘난 이야기만 하다가 돌아왔을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AI를 통해 정리해본다.
120일 공부와 은발의 꿈
120일 공부 속에서 나는 “천해여래”라는 이름으로 수기를 받았다.
가슴에 이름을 품고 호흡과 흐름을 지켜보니,
어느 순간 꿈에서 은발이 도미노처럼 번지는 장면을 보았다.
그것은 성숙과 안도감으로 다가왔다.
타력과 자각
타력 의지 아님: 외부에 기대서 끌려가는 게 아니라,
내 참나의 자리에서 그분들을 공부시키고,
동시에 그분들이 곧 천해여래로 드러난 나의 경계(천경)임을 체득하는 공부 회향.
이것은 “부처는 밖에 있지 않고, 나의 참나와 둘이 아니다”라는 불교의 본 뜻과도 이어지고,
내 안에서 스승과 제자가 함께 공부하는 자리가 곧 천해여래라는 깊은 자각이다.
곁에 있는 선지식들
나의 선지식은 멀리 있지 않았다.
빈두라 존자 : 늘 세상 곁에 머물며, 자비로 법을 전하는 살아 있는 아라한.
라후라 아라한 : 투덜거림과 경계를 포용하며, 침묵 속에서 온화하게 받아주는 힘.
반투라 아라한 : 오랜 세월 묵묵히 법을 지키며, 존재 자체로 전하는 힘.
나가세나 아라한 : 지혜와 사유의 힘으로 경계를 뚫어내는 존자.
보살 : 걸림 없는 지혜로 나를 품는 준제보살.
여래 : 이미 내 안에서 드러난 천해여래의 이름.
아들 : 집착과 사랑을 동시에 드러내는 거울.
자연 : 침묵 속에서 품어주는 가장 오래된 스승.
경계 속의 공부
나는 깨달음을 목표로 하지만, 현실에서는 늘 경계가 드러난다.
사유에 빠져들면 이미 여래,
상대 앞에 서면 침묵만 남는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그 답답함조차 내 캐릭터를 받아주는 그분이 있다는 확인이다.
그분이 곧 나의 선지식이고, 나의 공부다.
맺으며
빈두라 존자, 라후라 아라한, 준제보살, 나가세나 존자의 기운 속에서
오늘도 경계를 품으며 걷노라면,
은발의 도미노처럼.
👉 지금은 나가세나 존자와 준제보살이 마음에 가까이 있지만,
아직은 이면을 보지 못하니,
공부 중에 자연스레 드러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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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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