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일의 수다#731] 영화 84제곱미터 : 서울 아파트를 둘러싼 집착과 허상

요즘 각종 커뮤니티나 SNS를 보다 보면, 영화 84제곱미터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등장하더라고요. 검색해보니 서울 아파트를 배경으로 한 블랙코미디 영화로, ‘아파트 한 채가 인생을 바꿀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했다고 합니다.

주인공 ‘정우’는 평범한 직장인인데, 우연히 서울 시내의 84제곱미터짜리 아파트에 입주하게 되면서 인생이 뒤바뀌기 시작해요. 주변에서는 “드디어 성공했다”는 축하가 쏟아지고, 커리어도 풀리고, 투자도 잘 되고, 사람들 눈빛도 달라지죠.

근데 이상하게도, 영화는 그 성공의 과정이 마냥 기쁘게만 느껴지지 않게 만들어놨어요. 저도 처음엔 ‘이렇게까지 잘 풀려도 되나?’ 싶었고, 그로 인한 불안감이 쌓이면서 왠지 모를 불편함이 들더라고요. 중간엔 심지어 “이거 끝까지 못 보겠다” 싶을 만큼 스트레스가 쌓이기도 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얘기가 어떻게 끝날지가 궁금해서 결국 끝까지 보게 됐습니다.

알아보니 이 영화는 이동규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라고 해요. 그동안은 단편 영화 쪽에서 주로 활동해 왔다고 하는데, 이번 작품을 통해 도시 공간과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심리를 날카롭게 풀어낸다는 평가를 받고 있더라고요. 감독 본인은 인터뷰에서 “서울 아파트는 더 이상 꿈이 아니라 공포”라고 표현하기도 했다고 해요.

영화의 몰입도를 끌어올리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건 단연 배우 강하늘이었습니다. 사실 강하늘은 다양한 장르에서 연기 스펙트럼이 넓은 배우로 잘 알려져 있는데요, 이 영화에선 그 특유의 능청스러움과 진지함을 오가며 굉장히 입체적인 연기를 보여줍니다.

특히 인상 깊었던 장면은, 코인이 정점에 올랐을 때 전기 충격기까지 맞고도 팔고자 하는 집념을 보여줄 때, 웃음과 안타까움을 동시에 주더군요. (진정 성공하길 바랐습니다…)
현실에서도 자주 보는 인간 심리를 과장되게 그려냈는데, 정말 씁쓸하면서도 웃음이 나더라고요.

엔딩은 다소 허무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주인공이 아파트도 잃고, 투자도 실패하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무너지는 등 뭔가 ‘다 잃었다’는 느낌이 들죠. 하지만 오히려 그게 더 현실적이었고, 저는 그래서 더 좋았다고 느꼈어요. 요즘 영화들이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이런 결말이 오히려 더 개연성 있게 느껴졌습니다.

서울의 아파트가 정말 가치 있는 목표인지, 아니면 사회가 만들어낸 환상인지 되묻게 되는 이야기였고요. 어느 순간부터 우리가 ‘내 집 마련’이라는 말에 얼마나 강박적으로 반응해왔는지도 돌아보게 됩니다.

누군가는 설정이 과장됐다고도 하고, 중간중간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평도 있지만, 그 불편함조차도 감독이 의도한 장치였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회생활, 부동산, 인간관계, 그리고 투자까지… 요즘 우리 삶의 이슈가 다 담긴 84제곱미터 안에서, 한 남자가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되는지를 지켜보는 경험. 그 안에 나 자신을 투영하게 되는 순간이 분명 있을 겁니다.

서울 아파트를 둘러싼 욕망의 민낯, 현실과 풍자가 뒤섞인 블랙코미디, 추천할 만한 영화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이 어머니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어머니가 조용히 건네는 한마디가 또 다른 여운을 남깁니다.
“내가 서울에 못 살아서, 너를 서울에서 못 낳아서 미안하다.”
정확한 문장은 조금 다를 수 있지만, 그 말의 뉘앙스는 분명히 그런 마음이었습니다.

그 순간, 이 시대 부모 세대가 자식에게 느끼는 막연한 죄책감과 미안함이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서울에서 태어나지 못한 것’마저 미안해해야 하는 이 씁쓸한 현실이 다시 한번 마음을 묵직하게 만들더라고요. 그 말 한마디에 지금 우리 사회의 씁쓸한 가치 기준이, 또 세대 간의 단절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듯했습니다.

84제곱미터는 단순히 부동산 이야기가 아니라, 그 공간을 둘러싼 사람들의 불안, 집착, 체념, 그리고 사랑까지 담아낸 영화였습니다. 현실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지만, 그 안에서 또 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