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일의 수다#737] 영화 84제곱미터 후기 — ‘층간소음’이라는 키워드로 다시 보다
영화 84제곱미터를 보고 난 후, 문득 이 이야기를 ‘층간소음’이라는 키워드로 다시 떠올리게 됐다.
그렇게 거액을 들여 꿈에 그리던 아파트를 사고, 모든 걸 이뤘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기다리고 있던 건 매일 반복되는 층간소음이었다.
남들은 “예민해서 그래”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내 집, 나만의 공간에서 들려오는 타인의 소음은 단순한 생활 소음을 넘어선다.
이건 누군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명백하게 내 삶을 침범하는 일이다.
그렇게 비싼 돈을 주고 산 내 공간이, 이렇게까지 무가치하게 느껴질 줄은 몰랐다.
편안함을 기대했던 집이 오히려 스트레스의 근원이 되어버린 순간, 관객인 나도 정우의 감정에 깊게 이입되기 시작했다.
층간소음이라는 현실적인 문제는 이 영화 속에서 단순한 불편함이 아니라, ‘금이 간 일상’의 상징처럼 다가온다.
정우는 한때 모든 걸 갖춘 듯 보였지만, 어느새 균열이 시작됐고, 결국은 스스로 무너져버렸다.
하지만 그 균열의 원인은 개인의 불운이 아니었다. 시공사의 비리, 부실공사, 책임을 회피하는 관계자들, 그리고 “우리 잘못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판사.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으려는 현실 속에서, 진짜 피해자는 언제나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이었다.
영화에서 진실을 밝히려는 인물은 정우가 아닌, 프리랜서 카메라맨 ‘현우’다.
현우는 시공사와 재판부의 유착, 부실 시공 문제를 끝까지 파헤치며 진실에 집착한다.
하지만 그조차도 완벽하지 않다. 그 역시 점점 고립되고, 정우를 설득하려 하지만 결국은 자신의 방향으로 끌어들이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결국 이야기의 끝에서, 정우는 현우와 판사 사이에서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판사는 “도와주겠다”는 말로 정우를 회유하지만, 그것이 결국 자신이 살기 위한 전략이었을 뿐이라는 사실은 분명했다.
진심 어린 공감이나 책임감이 아닌, 정우를 도구로 본 것이었다.
그렇다고 현우가 정우를 위했다는 보장도 없다.
관객으로서도 문득 멈추게 된다. 과연 누구 편에 서야 하나? 힘없는 정우에게는 어떤 선택이 있었을까?
이 장면에서의 갈등은 단순히 스릴러적 긴장감을 넘어, 우리 사회 안에서 ‘누구도 믿을 수 없는 구조’가 어떻게 개인을 몰아가는가를 보여준다.
진실을 좇는 사람도, 권력을 가진 사람도 모두 나름의 계산을 하고 있다면, 가장 힘없는 사람은 도대체 누구를 믿고 살아야 하는가?
84제곱미터는 단순한 부동산 이야기가 아니다.
그 공간을 둘러싼 불안, 욕망, 체념, 그리고 무너지는 삶의 균형을 날카롭게 그려낸 사회 드라마다.
층간소음처럼 점점 깊게 스며드는 불편함은 곧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현실의 소리이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영화 속 정우처럼 우리 모두는 사회 구조와 타인의 선택에 끊임없이 휘둘리는 존재가 아닐까 하는 씁쓸한 자각이 마음에 오래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