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일의 수다#762] 스위스 여행 11 산의 여왕 리기산(Rigi)

스위스 루체른에서 출발해 리기산(Rigi) 정상에 오르는 길은 그 자체로 한 폭의 그림이었다. 하지만 진짜 감동은, 정상에 올라서 펼쳐진 풍경 앞에서 시작됐다. 구름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 아래로 펼쳐진 초록빛 초원과 마을들, 그리고 그 사이를 에메랄드빛 호수는 마치 한 폭의 수채화처럼 정교하고 평화로웠다.

리기산은 ‘산의 여왕(Queen of the Mountains)’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데, 그 이유를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알프스의 웅장함 속에서도 리기의 풍경은 유난히 부드럽고 온화하다. 거대한 봉우리가 주는 위압감보다는, 오랜 세월 동안 사람과 자연이 함께 살아온 흔적이 더 깊게 느껴진다.

정상에서 바람이 불어오면,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마음이 이상하리만큼 따뜻해진다. 멀리 보이는 루체른 시내와 호수 위로 떠 있는 하얀 배들, 그 뒤로 겹겹이 이어진 산맥은 시간의 흐름을 잊게 만든다. 관광객들이 많지만, 잠시 벤치에 앉아 숨을 고르면 세상이 고요해진다.

스위스의 매력은 어쩌면 이런 순간에 있다. 특별한 장식도, 거창한 건물도 없이 오직 자연 그 자체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 리기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이 풍경은 단지 ‘아름답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복잡했던 생각이 조금씩 정리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힘이 생기는 그런 풍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