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일의 수다#776] 스위스 여행 21 고요의 호수를 걷는 사람들

in #kr2 day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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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츠발트 호수는 마치 세상과 단절된 또 하나의 시간 속에 있는 듯하다.
유람선이 천천히 물길을 가르며 지나가면, 그 뒤로 잔잔한 물결이 은은하게 번진다. 스위스 국기가 펄럭이는 배의 붉은색과 호수의 청록빛이 대비되며, 그 장면만으로도 한 폭의 엽서 같다.

하늘은 구름이 많았지만 그조차도 풍경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멀리서 바라본 호수의 색은 바람에 따라 미묘하게 바뀌었다. 어느 순간엔 에메랄드빛, 또 다른 순간엔 푸른 유리조각처럼 깊고 투명했다. 배가 사라진 자리에 남은 물결은 마치 누군가의 발자국처럼 오래도록 호수 위에 머물렀다.

그리고 잠시 후, 호수의 한가운데 두 사람이 나타났다.
서핑보드 위에 서서 균형을 잡으며 천천히 물 위를 걸어가듯 나아가는 모습.
‘고요의 호수를 걷는 사람들’이라는 말이 딱 떠올랐다.

바람 한 점 없는 호수 위를 그들은 말없이 나아갔다.
그 뒤로 펼쳐진 산자락엔 작은 샬레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고, 짙은 초록빛 숲이 마을을 감싸고 있었다. 그 풍경이 너무 평화로워서, 시간을 잠시 멈춰두고 싶었다.

이츠발트는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에서 주인공이 피아노를 치던 곳으로 유명해졌지만,
실제로 이곳에 서 있으면 그 장면보다 훨씬 더 잔잔한 감동이 밀려온다.
소음도, 서두름도 없는 세상 속에서 오직 물소리와 새소리, 그리고 나의 숨소리만이 들릴 뿐.

나는 그 풍경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우리의 삶도 어쩌면 이 호수처럼, 잠시 멈춰서 흘러가는 대로 두면 좋지 않을까.
조급하지 않아도, 결국엔 자신만의 길을 따라 흘러가는 물처럼.

호수 위의 두 사람은 여전히 묵묵히 걸음을 이어갔다.
그 뒷모습이, 마치 ‘삶의 속도’를 말없이 일러주는 것만 같았다.
조용하고도 깊은 울림을 남긴, 이츠발트의 오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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