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 아포칼립스
구름이 아니라 하늘 자체가 통째로 소용돌이치는 것 같다. 블록버스터 멸망 영화를 12K 초고해상도의 거대한 스크린으로 감상해도 이 정도의 압도감을 받을 수 있을까.
이 하늘을 가만히 구경하고 있자니 지금 당장 종말이 들이닥쳐도 어색하지 않겠다고 생각한다. 그날이 바로 오늘이라면, 얼른 집에 가서 미리 준비해 둔 멸망용 와인을 열어 축배를 들어야지. 축. 아포칼립스.
루크레티우스는 『사물의 본성에 대하여』에서 ‘달콤한(suave) 것’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대양이 바람에 요동칠 때, 다른 이들의 비참함을 뭍에서 지켜보는 것. 고통받는 동족을 보며 기쁨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피해 간 불행을 응시하는 것이 달콤하다."
"전쟁 중의 큰 교전을 아무런 위험 없이 목격하는 것. 높은 곳에 올라 전열을 가다듬은 전장을 바라보는 것 또한 달콤하다."
안전한 장소에서 타인의 고통을 지켜보며 안타까움과 연민을 느끼는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 한 구석에는, 그 고통을 비껴 나 있다는 걸 확인하며 안도하는 이기적 본능이 깔려있다. 때로는 그 원초적 본성이 ‘숭고미’라는 이름으로 포장되기도 한다. 숭고미. 해변가의 높은 언덕 위에서, 온 세상을 타격하는 듯한 거대하고 광폭한 파도를 안전하게 바라보며 느끼는 숭고한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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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ccessgr.with (74) 22 hours a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