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사변 육군전사 4권(1)

in KWH 한국전쟁사15 days ago (edited)

제1장 총반격 개시 전 피아의 상황
제1절 적의 상황
제1항 총퇴각 개시 전, 적 전반적 상황
단기 4283년 6월 25일 미명 38선 일대에서 불법 남침을 개시한 북한괴뢰군은 당시 아군이 보유하고 있던 병력 장비로 본다면 괴뢰군 총병력은 200,000명이었고, 각종 포는 1,643문 썸마호트를 포함한 전차가 500대, 비행기 211대, 함정 30척이란 팽대(膨大)한 군사력을 갖추고 있었고, 아군에 비하면 병력이 2배, 포 약 15배, 전차 500배, 비행기 200배, 함정이 2배란 절대 압도적 군사력을 가지고 자유대한을 침범하였던 것이며, 그들은 이 군사력을 과시한 나머지 무자비한 인해전술로서 일시 전선에서는 그들이 유리한 조건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승승장구하여 낙동강 선까지 도달한 적은 아 공군의 계속적인 폭격의 강타로 그 손해가 심대하고 후방 보급이 두절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적은 협소한 지역에 압박하여 일거에 결전을 강요하려고 초려(焦慮)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적은 대전 방면에서 경부선 방면으로 남하하는 적과 상주, 문경, 안동 방면에서 남하하던 적으로 하여금 일거에 대구를 제압하게 한 후 부산 돌진을 기도하고자 단기 4283년 8월 15일을 전후하여 낙동강 선에 있어서의 소위 그들의 제1차 총공격을 감행한 바 있었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또한 아군의 병력 희소로 인하여 단시일 내에 호남지구를 석권한 적은 낙동강 서안 고령, 합천, 진주 선까지 침공하여 일시에 부산을 공략하려고 하였다. 따라서 낙동강 도하를 전후하여 적의 전력은 치명적 타격을 받게 되자 이에 대한 보충 책으로서 적은 주로 강제 모집한 의용군으로서 호남 방면에서 신편 사단을 보충하는 동시에 따로 신병으로 구성된 전선 경비사령부 계통의 신편 부대를 대량 편성하여 후방 전역에 배치, 장비의 보충 강화를 시도하면서 차기 공격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이에 따라 적은 약 5개 사단 병력인 제1, 15, 13, 3, 10사단으로서 대구를 위협하는 한편, 동부에 있어서는 제8, 12, 5, 제766유격부대로서 포항~영천을 위협하고 있었고 남부에 있어서도 역시 중동부에 호응하여 제4, 7, 6사단으로서 마산을 위협하고 있었다.
상기한 바와 같이 제1차 공격에 실패한 적은 제2차 공격을 위하여 온갖 수단으로 병력 정비에 광분한 나머지 적은 동년 9월 3일 12:00를 기하여 한국군 방면에서는 경부 방면에 주력을 지향하고 또한 국련군 정면에서도 진주, 마산으로 그 병력을 각각 지향하여 각각 부산을 목표로 일제히 총공격을 개시하였다.
뿐만아니라 적은 총공격을 감행하고자 8월 하순 왜관 정면으로의 제1차 총공격에 실패한 적은 전차 40대를 보유한 적 제17 전차사단을 의성 지구에 증강하고 왜관지구에서도 적 제15사단을 청송 방면으로 이동함으로서 동부의 적을 강화하였다.
그리고 남부 전선의 적도 제9사단과 전차 1개 연대의 증강을 얻어 각각 맹렬히 공격하여 왔다. 적이 감행한 제2차 총공격은 괴뢰군 총역량을 망라한 최대의 공격이었으며 이 적에 대하여 아군은 만단의 준비를 갖추고 이 적을 요격 각 전선에서 과감한 유인반격전을 전개, 적으로 하여금 재기불능의 대타격을 주었으며, 이것으로 전황은 결정적 전환 단계에 돌입하였고, 아군의 총반격의 동기를 작위(作爲)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당시 적은 제2차 총공격전에 있어서 보병이 99,790명과 포 110문, 전차 52대가 각각 섬멸 또는 파괴되었고, 아군의 총반격으로 말미암아 9월 15일 적은 일제히 전선에서 총퇴각을 개시하였으며 동해안의 적도 9월 17일에는 총퇴각을 개시하였다. 동시에 적은 전선 부대의 공격에 병행하여 남한 일대에는 내무성 경비연대 12개 연대를 배치하여 후방 경비에 임하게 하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