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사변 육군전사 4권(40)

제3항 신령 조림산 부근 전투
(一) 전투에 영향을 미치는 사항
본 전투지구의 작전 기간 중 초기에 있어서 그 기상은 하절기에 따르는 강우가 잦았으며 아침저녁으로 농무가 심하여 미명 작전 및 일모(日暮) 작전에 다소의 영향을 주었다. 또한 지세는 비교적 험한 산악 지대가 되어 전기 작전까지의 철수작전에는 유리한 지세였으나, 추격 작전에는 불리한 지세를 제공하고 있었다.
(二) 적의 상황
전투 초기부터 아군을 제압 후퇴시키고 신령~영천 부근까지 진격하여 목전의 대구를 일거에 탈취할 목적으로 연일 맹공격을 계속하였으나 9월 14일에 이르러 전 전선 전반에 걸쳐 전세 일변 아군의 총반격 작전의 개시에 봉착한 적은 재기를 위하여 북방으로 후퇴를 감행하면서도 재침의 기도를 포기하지 않았다.
본 전투지구에 투입된 적은 완편된 괴뢰군 제1사단, 제8사단, 제10사단, 제13사단, 기갑 제17사단이었으며 그 소질은 대부분이 점령 지역에서 강제 모집된 의용군이었고, 노련병은 불과 1/10 정도였다. 또한 적은 아군 항공기의 공격으로 인하여 주간 보급은 기대하지도 못하였으며, 주로 야간을 이용하여 일부분의 보급을 수송하였을 뿐 대부분은 현지 조달로서 보충하였으며 사기는 본 작전 초기에는 승리를 자신하고 있었으므로 보편적으로 왕성하였으나 아군의 공세 이전한 이후 전세 일변한 후로는 사기 극도로 저하되었을 뿐만 아니라 소기의 목적인 대구를 단시일 내에 점령하려던 적은 보현산, 신령, 영천 등의 대구 공방전에서 그 병력을 대부분 소모 당하고 일부 패잔 병력만이 아군의 반격 작전으로 북방으로 후퇴를 개시하였던 것이다.
(三) 아군의 상황
본 작전지구에 투입된 아군 보병 제6사단은 예하 제2연대, 제7연대, 제19연대 및 사단직할대로 총 병력 8,370명이었으며 그 전투서열은 다음과 같다.
제6사단 사단장 육군대령 김종오
제2연대 연대장 육군대령 함병선
제7연대 연대장 육군대령 임부택
제19연대 연대장 육군대령 김익렬
그리고 아군은 105밀리 야포 18문, 57밀리 대전차포 18문, 81밀리 박격포 17문, 60밀리 박격포 45문, 2.36인치 로켓포 39문, 기타 중기, 소총으로서 장비되어 있었고, 소질은 전투수행상 부득이 훈련의 제한을 받은 신병이 약 70%나 되어 그리 좋지는 못하였으나 제반 보급이 양호한 일면, 멸공 의식이 왕성하여 사기는 충천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 하에 있는 아군은 육본 작명 제180호에 의하여 안정화하고 적 주력과 적극적이고 강력한 접촉을 하기 위하여 국부적인 반격을 계속한 후 담당 전투지경 내 제1차 진출 예정선인 목표 도원 도로망을 확보하여 예천~함창 방면으로 진출하려 하였다.(부록 제8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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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koreanwar17님, 정말 흥미로운 한국전쟁 전투 분석입니다! 신령 조림산 전투에 대한 이 상세한 기록은 당시의 기상 조건, 적군의 전략과 사기, 그리고 아군의 상황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특히, 괴뢰군 사단의 구성과 아군의 장비 목록은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이렇게 꼼꼼한 자료 조사와 분석은 정말 대단합니다. 당시 전투의 어려움과 군인들의 용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혹시 이 전투에 대한 다른 흥미로운 사실이나 뒷이야기가 더 있을까요? 공유해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이 귀중한 게시물 덕분에 한국 전쟁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부탁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