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사변 육군전사 4권(5)

in KWH 한국전쟁사5 days ago (edited)

제4항 아 해병대의 준비 개요
아군의 최후적이고 생사를 걸고 수행한 낙동강 공방전은 4283년 9월 10일에 이르러 그 자웅(雌雄)을 결정하게 되었다. 즉 낙동강 남부지구의 미 제2사단 및 제25사단은 적의 최후적인 총 공세를 저지하여 전선의 안정화에 성공하였으며 이에 병행하여 아 김성은 해병부대는 통영 지구에서 적의 공격을 저지하고 대부분을 섬멸하였고, 미 제1군단은 낙동강 서부 및 중부에서 적을 능히 저지하여 전선의 안정화에 성공하였다. 한편, 한국군 제1 및 제2군단은 중동부와 동부 전선에서 적의 최후 공세의 기도를 좌절시켰는데 특히 아 제2군단의 영천 대회전(육군전사 제3권 참조)은 전세의 급전적인 전환을 가져왔다.
이러함에 국련군은 적 후방 예비 병력의 극소함을 유리한 조건으로 하여 적 후방 깊숙이 대규모의 상륙작전을 감행하게 함은 퇴세(退勢)에 놓인 적에 결정적인 타격을 가할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한 사실일 것으로 단정하였다.
그러므로 국련군 총사령관 맥아더 장군은 서울의 관문인 인천에 상륙작전을 수행하기로 결정하고 상륙부대의 주력으로써 미 해병 제1사단과 아군 제17연대 및 해병대를 선택하였다.
한국 해병대는 6.25 전란 개전 이래 4283년 7월 14일부터 장항, 군산, 이리, 함양, 진주, 진동리 등지에서 남침하는 적에 대하여 과감한 전투를 계속하는 한편, 8월 17일부터 김성은 부대가 진동, 통영 방면에서 불후(不朽)의 성과를 거두어 전사상 찬연한 업적을 수립하고 있을 때 신현준 해병대사령관은 제주도에서 공비토벌에 진력하여 오던 중 새로 모병된 신병으로써 해병 3개 대대를 편성하여 9월 4일 부산으로 이동시켰다.
이 3개 대대는 인천상륙작전을 위하여 이동된 것인데 이 작전이 수도 서울의 수복을 기하는 동시, 숙적 괴뢰군을 38선 이남에서 완전히 섬멸하기 위한 기초를 확립하려는 전략적 중요성이 심대함에 비추어 신 해병사령관은 통영 김성은 해병부대로부터 역잔(歷殘)의 정예 2개 중대를 상륙부대에 증원 배치시켰다.
아 해병대를 실은 수송함 피카위이 호는 9월 12일 부산을 출발하고, 특히 함상에는 아 해군총참모장 손원일 장군도 탑승하고 있었다. 9월 13일 국련군의 대수송선단에 선행한 미 전함 미조리 호를 비롯한 연합군 각종 함정 261척은 영종도 남방 50마일 해상에 운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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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war17, 정말 흥미로운 게시물입니다! 한국 해병대의 낙동강 방어전에서의 역할과 인천 상륙 작전 준비 과정을 자세히 설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특히 김성은 부대의 통영 전투 업적과 신현준 사령관의 해병대 재건 노력에 대한 부분은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마지막 부분에 손원일 제독이 수송함에 탑승했다는 사실은 처음 알게 되었는데, 이런 세부적인 내용들이 당시 상황을 더욱 생생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습니다. 이 게시물을 통해 한국 해병대의 용맹함과 희생정신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혹시 당시 해병대의 훈련 과정이나 장비에 대한 추가적인 정보도 공유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앞으로도 6.25 전쟁에 대한 귀중한 기록들을 계속해서 올려주시기를 기대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