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9-5 미국패권의 붕괴와 당연했던 것에 대한 회의, 민주주의 그 가벼움에 대해
상하이협력기구 정상회담과 9.3 중국전승절 행사 이후 서방의 언론은 충격을 받은듯하다. 이미 예상된 일이 꼭 눈앞에 보여야 느끼고 반응하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한국언론은 아직도 지금 벌어지는 현상에 대한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듯하다.
국제정세를 이해하기 위한 초보적 수준의 작업은 현재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초보적 수준의 작업이라고 해서 결코 쉽다는 의미는 아니다. 상황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은 없다. 내가 가지고 있는 선입견과 편견에서 벗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국가와 사회의 선입견과 편견은 알게 모르게 나에게 직접적으로 작용한다. 한국에 살면 한미동맹에 대한 의존, 북한에 대한 두려움과 적대감 같은 감정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상황이 바뀌어도 한번 고착된 의식은 사고와 인식의 자유를 억압하게 되는 것이다.
이번 상하이협력기구 정상회담과 9.3전승절 행사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미국의 패권이 붕괴했고, 중국과 러시아 및 글로벌 사우스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국제정치질서가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지금의 국제정치질서는 아노미적 상황이 아닌가 한다. 미국이 주도하던 국제정치질서는 이제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미국은 유럽과 일본 그리고 한국에 대해 제한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뿐이다. 미국은 더 이상 세계적 패권국가가 아니라 지역강국으로 강등되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미국의 세계패권은 붕괴된 것이다.
미국 패권의 붕괴는 그동안 작동해왔던 국제정치질서가 더 이상 무의미해졌다는 말이다. 미국이 주도했던 거의 모든 가치와 이념들은 의미를 상실했다. 미국이 주장했던 민주주의와 인권은 이미 무의미한 화석이 되어 버렸다. 미국 스스로 민주주의와 인권과 같은 가치를 내다 버리고 말았다. 앞으로 중국과 러시아가 중심이 된 새로운 국제정치 질서가 형성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미국이 지배했던 시기에 금과옥조로 여겨졌던 많은 것들이 무의미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필자는 민주주의라는 개념과 이념이 가장 먼저 가치를 상실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미국이 세계를 지배하던 당시에 민주주의는 최상의 가치였다. 미국은 전세계의 국가에 민주주의를 이식하려고 했다. 미국이 민주주의를 널리 퍼트리려고 했던 것은 민주주의가 미국의 이익, 즉 자본의 이익에 봉사했기 때문이다. 미국이 세계를 지배했던 당시 반제국주의를 주장하던 상당수의 민족해방 세력은 권위적 정치체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 국가들은 미국에게 민주주의 확산의 집중적인 대상이었다.
한국에서 권위주의 정권이 무너지고 민주주의 세력이 등장한 것도 이런 상황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박정희와 전두환 시대에 민주주의를 외쳤던 결과는 과연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민주화를 달성한 지금의 한국이 과연 박정희와 전두환 때보다 더 공정하고 기회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민주화가 달성되면서 외국 자본은 한국의 산업을 지배하고 있고, 한국의 민주화세력은 타락하여 자기 마음대로 부정과 부패를 하는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 마음껏 부정부패하는 자유를 위해 민주화투쟁을 하고 사람들이 죽어갔다는 말인가?
미국이 민주주의와 정치적 자유를 옹호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미국은 말로는 민주주의와 인권 그리고 자유를 옹호한다고 하면서, 피노체트의 독재를 지지했고, 사우디아라비아의 절대왕정을 지지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같은 절대왕정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는 국가는 이슬람 혁명을 주장하는 이란이다. 민주주의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미국이 원래의 개념에 충실한가 아니면 이란이 더 충실한가? 미국이 주장했던 민주화는 제국주의를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민주화는 국가와 공동체 재산의 민영화로 이어지고 이는 결국 미국 자본의 수중에 들어가는 과정을 밟았다. 한국의 IMF이후 수없이 많은 국가와 사회의 공동재산은 민영화를 거쳐 자본의 손으로 넘어갔다. 앞으로의 세상은 그 역작용이 작동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해 본다.
카다피가 통치하던 리비아는 사실상 최고수준의 국가였다. 리비아 국민들은 전세계에서 가장 잘살았다. 카다피가 죽고 리비아는 완전하게 아수라판이 되었다. 카다피가 독재자라고 생각하는가? 그래서 그를 죽인것이 민주주의적인 진보인가? 카디피를 죽인 것은 미국과 프랑스의 제국주의적 통치의 일환이었을 뿐이다.
필자는 한국의 최근 정치상황을 보면서 과연 민주주의라는 절차적 정당성이 지니고 있는 가치가 얼마나 유용한가에 대해 의심이 든다. 단적으로 말해보자. 민주주의적 선거로 당선된 이재명과 세습한 김정은 사이에 누가 더 역사적 정당성과 정통성을 가지고 있는가? 미국의 트럼프와 중국의 시진핑 중에서 누가 더 인민의 삶을 위해 복무하고 있는가? 트럼프와 푸틴 중에서 누가 더 자국의 인민을 위해 복무하고 있는가? 박정희와 전두환 대 문재인과 이재명 중에서 누가 더 인민의 삶에 더 많이 봉사했는가?
관점을 달리해보면 한국의 소위 민주화 세력들은 미국 제국주의에 가장 열렬하게 봉사한 세력이라고 해도 별로 틀리지 않을 것이다. 박정희와 전두환을 비판하고 비난하는 것과 한국이 그 시대를 통해 경제가 발전했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박정희와 전두환도 이미 죽었으니 그들도 역사가 되어 버렸다. 전두환 시대 한국의 경제는 최고를 구가했다. 고등학교와 대학을 마치면 취업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젊은이들은 전세계로 향해 나가서 장사를 했다. 지금 젊은이들은 전세계로 나가 유튜브를 하고 있다. 전두환이 독재를 한 것과 그 시대에 경제적 풍요를 구가한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한국의 민주화세력들이 박정희와 전두환을 비난하려면, 이 양자보다 더 큰 성과를 거두어야 한다. 비판을 무릅쓰고 박정희와 전두환을 소환하는 이유를 제대로 이해하기 바란다.
이런 말을 한다고 해서 민주주의적 절차가 지니는 가치를 모두 무시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필자는 그동안 지고의 가치로 생각했던 민주주의와 정치적 자유 그리고 인권과 같은 가치들이 과거와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지 못하며, 이런 현상은 미국이 패권을 상실했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렇고 보면 대중적인 정당조직과 정치세력은 앞으로 바뀌게 될 국제정치적 상황에서는 유용하게 작동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국가와 사회를 이끌어가는 사람은 대중이 아니라 고도로 훈련된 그리고 가치지향이 분명한 엘리뜨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개딸과 태극기 부대가 한국을 이끌어갈 수는 없다는 말이다.
박정희와 전두환 시대에 민주주의와 타는 목마름을 노래했다. 지금은 아무도 민주주의와 타는 목마름을 이야기 하지 않는다. 민주화는 달성되었으나 여전히 타는 목마름을 느끼고 있다. 오히려 박정희와 전두환때보다 더 심하게 타는 목마름을 느끼고 있다. 지금 대중이 느끼는 목마름은 생존과 삶 그 자체다.
지금은 모든 가치와 이념의 아노미적 상황이라고 하겠다. 미국적 가치는 모두 폐기되었고, 앞으로 미래에 어떤 가치와 이념이 주도할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어리석은 일은 과거의 가치와 기준에 사로잡혀 미래를 준비하지 않는 일이다.
착각하기 말기를 내가 민주주의를 비판하는 것은 미국이 제국주의적 지배를 위한 수단으로 작동하는 체제를 의미할 뿐이다. 국가와 민족 그리고 인민을 위한 민주주의는 계속 발전해야 한다. 절차적 정당성만으로 모든 부정적인 것들을 퉁치지 말자는 이야기다.
이제 우리가 알던 미국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 그림자만 우리를 둘러싸고 있을 뿐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