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남은 사람들 - 프롤로그

in #novel7 years ago (edited)

이것은 현실이다. 욕실의 한 쪽 천장에 달라붙어 있는 거울과 그 안에 비친 욕조와 물. 그리고 하얀 고깃덩어리.

벌써 몇 시간이 지난 것일까.

입술은 붉은 빛을 잃었고, 몸뚱이는 퉁퉁불어 처음 본 사람은 그것이 두부인지 피부인지 만져보지 않고선 분간하기 힘들지경이다. 일단은 시간부터 확인해봐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물밖으로 기어나오려고 시도 해보지만, 두개골의 깨질듯한 고통은 내 몸을 옭아매고, 나를 다시 욕조 속으로 곤두박질치게 만든다. 내가 몸을 가누고 욕실을 기다시피 나왔을 땐 이미 한참이라는 시간이 지나서였다.

시간을 확인해보니 남편이 직장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올 시간이었다. 밥은 안해주더라도 이 몰골만큼은 숨겨야 했다.

철컹.

하지만 이내 들려오는 도어락의 소리는 안 그래도 뻣뻣한 내 몸을 그곳에 그대로 굳혀버린다. 문이 열리고, 남편의 눈이 나와 마주친다.

이런 상황에서는 사람의 눈이라는 것이 참 신기할 따름이다.

약간의 눈 크기변화, 눈동자의 미묘한 떨림만으로 그 사람의 표정을 대변하고, 감정을 대변한다. 그리고 시선은 생각을 대변한다.

남편의 시선이 욕실 앞에 서 있는 나를 위 아래로 훑더니, 말 없이 현관 옆 방으로 들어간다. 이제 우리는 서로 말을 섞지는 않지만, 서로가 무엇을 하고, 무엇을 알고 있는지 알고 있다. 그 통찰의 깊이가 어디까지인지는 모르겠지만.

아기가 죽은 후, 나는 남편에게 그 전까지 해오던 친절한 말을 일체 거두었다. 아니, 화를 내고 욕을 했으며 심지어 살인마로 몰았다.

그것이 남편의 잘못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래왔다.

화를 풀 곳이 너무도 필요했다.

유산의 경험으로 인한 슬픔은 분노라는 감정으로 탈바꿈하여 밀어닥쳤고, 어딘가에다가 욕지거리를 하지 않고서는 버틸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믿지도 않는 신에게 욕을 했다. 왜 이런 몹쓸몸을 주었냐고, 바깥 세상의 햇볕이 따뜻한지 차가운지도 모르는 아기가 무슨 죄를 지었냐고.

눈 앞에 보이지도 않는 신이라는 작자에게 욕을 해보아도 허공에 대고 욕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어보였다.

그 후, 그 분노의 파편은 남편에게로 향했다. 아이의 죽음이 남편에게는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것을 알고있으면서도 내 주둥아리는 쉴 새 없이 떠들어댔다. 너는 네 자식을 죽인 살인마라고.

엉켜있던 실뭉치의 끝자락을 발견한 것 마냥 가슴 속에 맺혀있던 응어리의 해결책을 찾은 것 같아서 쉴새 없이 그것을 풀어헤쳤다.

그 뒤로는, 과거의 크고 사소했던 고생들도, 운명이 결정해버린 그 모든 것들도, 남편의 잘못으로 탈바꿈되었다.

나의 일방적인 욕설과 단정이 억울하지도 않은지, 남편은 벙어리, 혹은 귀머거리 마냥 가만히 듣고 있었다.

내말의 논리에 빈틈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그저 아무 말도 않고, 가끔 내 눈을 빤히 쳐다볼 뿐이었다.

그 눈은 보았을까. 내 눈의 눈물을. 그 눈물이 단순한 분노의 눈물이 아닌 미안함의 눈물이기도 하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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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at post. Once thing I've learned in life is "Build your own dreams, or someone else will hire you to build thei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