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에 깃든 詩 - 박경리/ 토지 42.
박경리 선생님의 토지를 읽다보면 그 방대함과 등장인물들이 태생적이라할
가난과 한에서 벗어나려 할수록 조여들던 질곡과 아침이슬처럼 사라지던
영화와 권세의 덧없음이 씨실과 날실처럼 서로의 삶을 교차하고 드나들면서
강물처럼 흘러 물살이 나를 휘감았다.
오래 전에 삼국지를 세 번만 읽으면 세상사에 막힘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최근에 또 그와 비슷한 말을 들었다. 토지를 세 번만 정독하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고 한다.
우리 문학의 금자탑이라 할 토지를 다시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보석처럼 빛나는 문장을 발견하게 되는 행운이 찾아온다.
길섶에 뻗은 풀잎에 이슬이 남아 있어서 짚세기가 젖는다. 날씨는 변덕을 부릴는지, 흩어져 있는 구름은 훨씬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았으나 하늘은 휑하니 높았고 푸른 빛은 차가웠다.
‘불쌍한 놈, 이리 될지 모르고 일을 저질렀나, 인륜을 짓밟아놓고 우찌 지가 살기를 바랄 것꼬, 남으 여자도 유만부도이지. 하늘 겉은 상전의 아씨를, 부치가 까꾸로 서지 않고서야, 환장했지. 빌어묵을 놈. 참말이제 이 노릇을 우찌하노.’
다시 출발하여 일행은 섬진강 강줄기와 작별하고 산과 산의 샛길로 들어섰다. 그리하여 해 떨어지기 전에 연곡사에 당도하였다. 적막한 냉기를 실은 산기운이 걸음을 멈춘 일행들 옷 사이로 스며 들었다. 해묵은 소나무 전나무 오리나무 사이로 저문 햇살이 한결 화사하게 비치고 있다.
- 토지 제2편 추적과 음모 14장, 추적 중에서-
Upvoted! Thank you for supporting witness @jswit.
@jjy 님, 안녕하세요! 박경리 선생님의 '토지'에 대한 애정이 듬뿍 느껴지는 포스팅, 정말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특히 '토지'를 세 번 정독하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는 말씀에 깊이 공감하며, 저도 다시 한번 '토지'의 깊은 강물에 빠져보고 싶어졌습니다.
보석처럼 빛나는 문장들을 발췌해주신 덕분에, 잠시나마 '토지' 속 세계를 다시 여행하는 기분이었어요. 선생님의 섬세한 묘사와 인간 군상들의 삶을 꿰뚫는 통찰력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zzan문학상공모' 소식도 감사드립니다! '토지'를 읽고 영감을 받은 많은 분들이 참여해서 스팀잇 문학 생태계가 더욱 풍성해지기를 기대합니다. 좋은 글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