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에 깃든 詩 - 박경리/ 토지 46.
박경리 선생님의 토지를 읽다보면 그 방대함과 등장인물들이 태생적이라 할
가난과 한에서 벗어나려 할수록 조여들던 질곡과 아침이슬처럼 사라지던
영화와 권세의 덧없음이 씨실과 날실처럼 서로의 삶을 교차하고 드나들면서
강물처럼 흘러 물살이 나를 휘감았다.
오래전에 삼국지를 세 번만 읽으면 세상사에 막힘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최근에 또 그와 비슷한 말을 들었다. 토지를 세 번만 정독하면
이루지 못 할 일이 없다고 한다.
우리 문학의 금자탑이라 할 토지를 다시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보석처럼 빛나는 문장을 발견하게 되는 행운이 찾아온다.
나무숲을 거스르고 지나가는 바람소리, 다시 나타난 계곡의 물 떨어지는 소리, 앞장서 가는 강포수는 이따금 뒤다르는 사라에게 주의를 주곤 했는데 고함을 치듯하는 그의 목소리는 금방 산소리에 지워지고 만다.
계곡에서, 바위마다 두껍게 늘어붙은 이끼에서, 썩은 나무 밑둥, 푸르름이 서로 반영되어 소나기 퍼붓는 곳에 번개치는 순간의 밝음과도 같이 더러는 움직이고 더러는 정지한 나뭇잎, 발밑에서 스치는 산죽에서, 사방에서 습한 기운이 기류를 타고 묻어오며 움직인다.
날짐승은 요란하게 날갯짓을 하여 가지에서 가지로 옮겨앉으며 인간들이 가까이 왔음을 경고하는 것인지 날카롭게 우짖는다. 작은 동물들은 덤불 속으로, 혹은 석벽 쪽으로 피해서 달아난다. 다시 계곡이 멀어지면서 물소리도 멀어져갔다.
- 토지 제2편 추적과 음모 16장, 목기막에서 중에서-
Upvoted! Thank you for supporting witness @jswit.
@jjy 님, 박경리 선생님의 "토지"에 대한 애정이 듬뿍 느껴지는 멋진 글입니다! 사진 속 필사본에서도 정성이 느껴지네요. "토지"를 세 번 정독하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는 말처럼, 작가님의 글에서도 깊이 있는 통찰과 문학적 감수성이 묻어납니다.
특히 자연을 묘사한 부분은 마치 제가 직접 그 숲 속에 있는 듯한 생생함을 전달해 줍니다. 바람 소리, 물 떨어지는 소리, 습한 기운까지... 문장 하나하나가 섬세하게 살아 숨 쉬는 것 같아요.
"토지"의 감동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저도 다시 한번 "토지"를 읽어보고 싶어졌습니다. zzan 문학상 공모전에도 참여하신다니 좋은 결과 있기를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