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EC 앞둔 경주 한옥거리…무분별한 외국어 간판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아펙) 정상회의를 한달여 앞둔 천년고도 경주 한옥
거리도 관광객 맞이에 분주하다. 경주시가 한글과 영어, 그림문자를 함께 표기할
수 있도록 간판 지원에 나섰는데, 무분별한 외국어 간판은 적지 않다. 다음달 9일
은 579번째 한글날이다.
경주 황남동 대릉원 옆 포석로를 따라 이어진 황리단길, 빗방울이 떨어지는 궂은
날씨에도 가족, 연인, 친구들과 함께 온 관광객들로 붐볐다. 대릉원, 천마총, 금관
총, 황남동고분군 등과 가까운 이곳은 한옥으로 꾸민 다양한 음식점과 카페, 소품
가게, 숙박업소 등이 모인 젊은 관광객들한테 인기가 높은 상권이다.
건물 대부분은 한옥 형태다. 골목 안쪽에서는 낮은 담장 안쪽으로 마당, 대들보와
마루까지 온전히 남은 한옥을 볼 수 있다. 한 한옥 카페는 한글을 나무판에 적어
입구에 문패로 붙였다. 몇달 전까지 담에 일본어 홍보물을 붙인 한 음식점도 한글
로 바꿨다.
하지만 황리단길 곳곳에는 여전히 외국어 간판이 무분별하게 사용되고 있다. 길거
리에 들어선 즉석 사진관이나 퓨전음식을 파는 음식점은 이국적인 느낌을 저마다
의 언어로 적힌 간판을 내걸고 한옥마저 일본 골목길을 흉내 냈다.
화장품 등을 판매하는 대기업 매장은 한옥 분위기를 내면서도, 간판과 담벼락에
브랜드 이름을 영어로만 썼다. 한글이 익숙하지 않은 관광객들에게 영어 간판이
편하지만, 과도한 외국어 간판이 불편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경주시는 한옥보존지구, 고도지구, 역사문화보존지구 등의 건축물은 한옥으로 제한
하면서도 간판은 규제하지 않는다. 옥외광고물법은 한글 간판을 원칙으로 하고, 특
별한 사유가 없으면 한글과 함께 써야 한다고 정한다. 하지만 프랜차이즈는 제한할
수 없고, 간판 크기가 5㎡ 미만이거나 3층 이하 건물의 간판은 허가·신고 대상도
아니다. 한글 간판을 강제 할 근거가 없다고 해명한다.
경주시는 외국인 관광객을 위해 이달 말까지 낡고 훼손된 간판을 한글과 영어, 그림
문자(픽토그램)가 함께 적힌 새 간판으로 바꾸기로 했다. 경주시는 지난해 말부터 사
업 신청을 독려하고 사업비 2억원을 확보했다. 하지만 참여 가게는 타로 집, 소품 가
게, 마트, 부동산 등에 그쳐 집행 예산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한편 경주시는 3억4천만원을 들여 이달 말까지 보문관광단지 보문로 4㎞ 구간 설치된
안내판 45개를 한글, 영어, 그림문자가 적힌 새 안내판으로 교체한다.
본문 이미지: 한겨레신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