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안/시즌2] Chapter3. 장미빛 학교의 오리엔테이션

in #stimcity10 days ago (edited)



"넌 어디서 왔니?"

"에펠탑 타고 떨어져 내렸어."

"뭐라고? 에펠탑을 타고 떨어져 내렸다고?"



가브리엘은 소년의 말에 깜짝 놀랐다. 소년이 에펠탑을 타고 떨어져 내렸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가브리엘은 통성명을 하자고 물어본 것이었는데, 소년은 자신이 에펠탑을 타고 추락했다며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고 있었다.



"음.. 그러니까, 떨어져 내린 건데 날아오른 거야. 중력의 관념에 묶이지 않으면 보는 위치에 따라 떨어져 내리기도 날아오르기도 하는 거지. 아, 이건 나도 마법사님한테 들은 얘기야. 함께 떨어졌거든. 아니 날았지."



가브리엘은 소년의 말에 더 아리송해졌다. 떨어져 내린 건데 날아올랐다는 말은 무슨 말이며, 함께 떨어져 내렸다는 마법사는 또 누구인지. 가브리엘은 에펠탑을 따라 추락했다는 게 무슨 말인지 더 묻고 싶었는데, 소년은 화제를 돌려 다른 질문을 했다.



"근데 우리 교장 진짜 이상하지 않아? 왜 교탁에 앉아서 담배를 펴? 그게 훈화야, 오리엔테이션이야? 난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던데. 그리고 여기 사람들은 모두 서로 아는 사이야? 나만 빼고 다들 엄청 친해 보이던데."



소년은 좀 전에 끝난, 소년을 미궁에 빠져들게 한 마법 학교의 오리엔테이션에 관해 물었다. 오후 2시에 시작된다던 오리엔테이션은 좀처럼 시작할 줄 모르더니 2시간쯤 지나서야 사람들이 하나둘 나타나서 서로 인사를 해대기 시작했다. 마치 오래 알아 온 사람들마냥 서로 안부를 물었다. 소년은 사람들 사이에서 뻘쭘해져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말이 통해야 대화에 끼지 않겠는가. 소년은 심지어 이 학교를 계속 다닐 수 있을까 회의가 들기까지 했다. 외로운 건 참을 수 있어도 뻘쭘한 건 견딜 수가 없으니. 그러나 가브리엘은 그들도 서로 처음 만난 사이라고 했다.



"이 도시가 그래. 처음이 없어. 절교도 없고."



가브리엘은 소년의 반응을 이해한다며 이 도시의 분위기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과도한 친절과 예민한 존중. 없는 듯 보이지만 어느 사회보다 강력한 보이지 않는 경계.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타인에 대한 호기심. 이 도시에는 많은 이질적인 것들이 쏟아져 들어오지만, 마냥 겉돌지 않고 결국 자신의 자리를 찾아간다고 가브리엘은 말했다. 마치 소년에게 안심하라는 듯.



강당이 어느 정도 찬 걸 보니 모두 얼추 모였나 싶은데, 아무도 무언가를 시작하지 않고 있었다. 소년은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 더욱 혼돈에 빠져 들었다. 모두가 상식어와 직관어를 섞어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직관어를 익히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소년은 들려오는 사람들의 대화를 절반은 못 알아듣고, 나머지 절반조차 암호 같은 저 말이 상식어인지 직관어인지 해독하기에 바빴다. 상식어 조차 직관어를 빗대어 사용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같은 학생인 줄 알았던 어떤 여자가 교탁에 걸터앉더니 담배를 한 대 피워 물고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교장인 것 같았다. 그러자 사람들이 모여들어 함께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소년은 처음 들어보는 그 노래가 왠지 낯설지 않았다. 가끔 마법사가 불렀던 것 같기도 하고. 어디서 들어본 적은 없지만 어쨌든 아는 노래라는 느낌이 들었다. 장밋빛 인생에 관한 노래. 소년은 아마도 교가인가보다 생각했다.



교장은 후렴구를 여러 번 반복하다가 갑자기 두 손을 들더니, 순식간에 공간을 하늘로 붕 띄워 올렸다. 사람들이 뜬 게 아니고, 오리엔테이션이 이루어지고 있는 강당 자체가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 건물이 떠오른 게 아니고, 정확히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공간만 떠올랐다. 소년은 사람이 인식하는 공간이 건물에 고정된 것이 아니란 사실에 깜짝 놀랐다. 공간은 그저 공간으로서 존재하고 건물과 사람, 공간은 사람의 인식 속에서만 연결돼 있다는 새로운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교장은 떠오른 사람들을 올려다보며 연설을 하기 시작했다. 상식어인지 직관어인지 더욱 모르겠는 교장의 연설은, 공간 아래에서 위로 연기가 타오르듯 사람들을 휘감았다. 사람들은 웃기도 하고 박수도 치며 교장의 연설에 적극적으로 호응했지만, 소년은 직관어 투성이인 교장의 연설을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소년은 멀미가 나기 시작했다. 떠오른 공간 때문인지, 쏟아져 들어오는 직관어 때문인지, 소년은 알 수가 없었다.



"넌 아까 그 연설 좀 알아들었니?"

소년이 묻자, 가브리엘은 담배를 피워 물며 말했다.

"뭐 대충. 뻔한 얘기잖아. 첫날의 얘기. 앞으로 잘 지내보자. 뭐 그런."

소년은 가브리엘이 뿜어대는 담배 연기를 피하려고 고개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다시 물었다.

"난 하나도 못 알아듣겠던데. 그리고 그건 뭐야? 마법이야? 공간을 띄워 올린 거 말이야."

"아, 그건 마술이지. 마법은 중력 법칙을 거스르지 않아. 활용하지. 그건 신입생들을 위한 이 학교의 전통 세리머니 같은 거야. 사람들은 마법사에게 그런 걸 기대하니까."

"세리머니라고? 난 멀미가 나던데. 근데 넌 어떻게 이 학교에 대해서 그렇게 잘 알아?"

"나야 뭐, 이 학교에 오래 다녔으니까. 실은 처음이 아니야. 재수생이거든."

"재수라고?"

소년은 예상치 못한 가브리엘의 답변에 깜짝 놀라며 말했다.

"얘, 창피하게. 소리가 너무 크다. 그래 재수 말야. 작년에 마법사 자격 검증 시험 2차에서 떨어졌어."

"검증 시험? 그런 것도 있어?"

"넌 몰랐구나? 당연하지. 저절로 마법사가 되는 법은 없어."



소년은 당황했다. 학교라면 물론 시험도 있고 졸업 자격 테스트도 있겠지만, 마법사 자격 검증 시험이란 게 있다는 얘기는 누구한테서도 듣지 못했다. 마법사에게서도. 물론 마법사가 일부러 얘기해 주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소년들은 시험을 싫어하니까.



"학교를 졸업하려면 마법사 검증시험을 통과해야 해. 그런데 시험이 매년 있는 것도 아니야. 어느 날 갑자기 시험 공지가 나거든."

"떨어지면 어떻게 되는데?"

"너는, 붙으면 어떻게 되는지를 물어봐야지. 떨어지면 어떻게 되는지를 뭘 물어보니. 다시 봐야지. 될 때까지. 본인이 원하면 계속 볼 수는 있어. 하지만 공지가 십 년에 한 번 나올 때도 있고, 일 년에 몇 번씩 나올 때도 있고, 대중없어. 마법사 쿼터가 있다고 하더라구. 정확히 몇 명인지는 모르고. 어떤 학생은 시험보다 늙어 죽은 사람도 있대."

"뭐? 늙어 죽었다고??"



가브리엘은 자신은 시험만 보다 늙어 죽고 싶지는 않다며, 다음 시험에는 꼭 붙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러나 테스트는 자신만 잘 한다고 붙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덧붙였다.



"마법사는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되는 게 아니야. 관계의 문제, 선택의 문제를 가이드하기 위해 마법사가 되는 거니까, 테스트 과제는 관계와 선택의 상황에서 출제가 돼. 그러니 어떤 사람들하고 어떻게 연결될지 몰라. 그것 자체가 테스트니까. 그래서 학생들은 서로에게 관심이 많아. 누구라도 테스트의 대상으로 연결될 수 있으니 말이야."



소년은 가브리엘과 다른 학생들이 초면부터 왜 친한 척 구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학기 초에 친구를 찾는 일은 학생, 더군다나 신입생이라면 가장 관심이 가는 일이지만, 가브리엘과 학교 사람들의 태도는 학기 초의 그것을 넘어서는 과도함 같은 것이 있었다. 특히 가브리엘은 학생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통성명을 하고 연락처를 묻고는, 단톡방을 만들어 연결을 주도하려고 했다. 뭣도 모르는 소년으로서는 나서서 주도해 주는 이가 있어 다행이다 생각이 들었지만, 이런 배경이 있을 줄은 몰랐다. 오늘의 대화 역시, 오리엔테이션이 끝나자마자 자리를 뜨려는 소년을 가브리엘이 먼저 붙들었다. 커피 한 잔하자며.



"아, 그렇구나. 테스트에 통과해야 한단 말이지. 그런 게 있는 줄은 몰랐네."

소년이 절망적인 듯 말하자 가브리엘은 소년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을 이었다.

"걱정 마. 어차피 마법사의 삶이란 게 문제 해결의 연속인데, 그까짓 테스트야 통과해버리면 돼지. 그리고 꼭 검증시험에 통과해야 마법사가 되는 건 아니야."

"그래? 그럼, 무슨 다른 방법이 있어?"

"나는 마법사다! 스스로 인정하면 돼. 마법사는 운명이니까."



가브리엘은 담배 연기로 구름을 폭폭 피워 올리며 소년에게 엄지척을 해보였다. 그러나 재수 중이라며 시험은 중요치 않다는 듯 얘기하는 가브리엘이 소년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담배를 배우지 않고 이 학교를 무사히 졸업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그럼 넌, 왜 재수를 하는 건데?"

"나? 이 도시에 살고 싶어서. 난 이 도시를 좋아하거든."



가브리엘은 이 도시에 살고 싶어서 재수를 한다고 말했다. 물론 검증 시험에 떨어졌으니 재수를 하는 것이고, 학교가 이 도시에 있으니 재수를 하는 것이라고 가브리엘은 말했다. 마법사는 원하면 언제든 '나는 마법사다!' 선언하면 된다면서. 하지만 그게 검증 시험에 합격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라고 덧붙였다.



"넌, 이 도시에 뭐가 좋으니?"

"뭐가 좋냐고? 뭔 그런 바보 같은 질문이 다 있니? 넌 에펠탑을 타고 이 도시에 왔다며. 이 도시에는 에펠탑이 있잖아! 그리고 너 같은 친구가 있고! 하하하"



가브리엘은 카페가 떠나가라 웃으며 소년을 친구라고 부르더니, 여자 친구를 만나러 가야 한다며 휘리릭 사라졌다. 에펠탑과 소년 그리고 친구. 소년은 사라져 버린 가브리엘의 빈자리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소년도 어쩌면 이 도시를 좋아하게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러다 가브리엘에게 정작 수업 스케쥴을 물어보지 못했다는 걸 깨닫고는 낭패감이 들었다.



'아, 수업 스케쥴을 물어본다는 걸 깜빡했네. 도대체 수업은 언제 시작한다는 거야. 공지를 해 줘야 알지. 아니, 내가 못 알아 들은 건가?'



소년은 멀미가 날 만큼 어지러웠던 교장의 연설 어디에선가 수업 스케쥴에 관한 공지가 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가브리엘에게 DM을 보냈다. 그러자 가브리엘에게서 바로 답신이 왔다.



'가브리엘, 미안한데. 우리 수업 스케쥴 어떻게 되는지 아니?'

'아, 그거. 언제 하고 싶은데?'

'언제 하고 싶냐고? 그걸 왜 나한테 물어? 정해져 있는 거 아니야?'

'우리가 정하면 돼. 내가 교장이니까.'

'뭐? 네가 교장이라고??'



가브리엘이 말했다. 자신이 이 마법 학교의 교장이라고. 소년은 깜짝 놀라 그럼 아까 연설한 사람은 누구냐고 물었다. 가브리엘은 자신도 아직 그가 누구인지 모르지만, 아마도 관종끼가 가득한 신입생인 거 같다고 말했다. 학교의 전통 세리머니를 펼친 거 보니 부모님이 마법사인 것 같다며 아직 그 친구와의 면담은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급하게 파산한 학교를 인수하는 바람에 일정이 모두 뒤죽박죽되었다며 한숨을 쉬었다. 소년은 가브리엘의 말이 무슨 소리인지 당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재수생이라던 가브리엘이 어떻게 교장이 될 수 있는지 소년은 이해가 되질 않아 가브리엘에게 다시 물었다.



'그런데 넌 재수 중이라고 하지 않았어?'

'맞아. 작년에, 내가 입학하고 십 년 만에 검증 시험이 열린 거야. 운도 없지. 십 년 만의 시험이라니. 게다가 보기 좋게 떨어졌지 뭐야. 그러니 재수생인 거지.'

'그럼, 교장은 어떻게 된 거야?'

'그거야 내가 이 학교에 제일 오래 있었으니까. 하하 교장은 일종의 아르바이트라고 할 수 있지. 암튼 해주고 싶은 얘기가 많지만 앞으로 차차 알게 될 거야. 학교는 이제 시작이라구! 난 여자 친구가 기다리고 있어서 말이야. 아, 스케쥴은 정해지는 대로 단톡방에 올려놓을게. 후후 언제가 될진 모르지만. 오늘은 그럼 이만. 휘리릭~'



소년의 마법 학교는 오리엔테이션을 마쳤다. 그러나 소년은 수업이 언제 시작될지 알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이 학교는 어떻게 운영이 되는지 종잡을 수가 없다. 그러나 추락하는 소년이 어디로 떨어져 내릴지 알지 못했던 것처럼, 입학하기로 되어 있던 마법 학교가 파산하게 될 줄 몰랐던 것처럼, 같은 신입생인 줄 알았던 친구가 실은 이 학교의 교장인 줄 몰랐던 것처럼, 이 도시의 시간이 어떻게 흐를지 누구도 알지 못한다는 듯 에펠탑 위에서 또 누군가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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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소년이안/시즌2] Chapter3. 장미빛 학교의 오리엔테이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