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안/시즌2] Chapter5. 마법사의 검은 눈물
한편, 소년과 함께 떨어져 내린 마법사는 에펠탑에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학교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철봉에 거꾸로 매달리듯, 마법사는 거꾸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야. 이게 세상을 바로 보는 거지. 뒤집힐 대로 뒤집혀 버린 세상이잖아.'
뒤집힌 세상을 바로 보려고 거꾸로 매달린 마법사는 사람들이 거꾸로 달리는 모습이 우스꽝스러워 보였다. 누굴 보고 위험하다고 하는지. 하지만 앞만 보고 달리는 사람들에게 거꾸로 매달린 마법사가 보일 리 만무하다.
마법사가 에펠탑에 거꾸로 매달린 것은 세상을 바로 보고자 함이기도 하지만, 또한 끝없이 흘러내리는 검은 눈물을 멈춰보려고 매달린 것이기도 하다. 마법사의 검은 눈물은 에펠탑을 타고 날아오르기 전부터 흘러내리기 시작하더니 좀처럼 멈출 줄 모르고 있었다.
'슬프지도 아프지도 않은데 이 눈물은 왜 멈추지 않는 거야. 강물 위로 하도 쏟아내서 사람들이 석유가 나는 줄 알겠어.'
마법사의 끝없이 쏟아져 내리는 검은 눈물은 강물을 까맣게 물들였다. 마치 원유의 바다가 된 듯 검은 강물이 도시 위를 타고 흘렀다. 이를 본 사람들은 멸망의 징조라며 불안해했다. 그러나 아무도 하늘을 바라보지 않으니, 이 검은 물이 어디서 왔는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날이 저물고 밤이 되자, 강물도 하늘도 모두 검게 변해 버렸다. 다만 하얗게 뜬 보름달만이 은은하게 세상을 밝혀주고 있었다. 마법사는 견디다 못해 달님에게 물었다.
"달님, 도대체 이 눈물은 어떻게 해야 멈출 수 있나요?"
"울지 말아요. 그래야 눈물이 멈추죠."
"아니 울지 말라니, 누가 울었다고 그래요. 난 아프지도 슬프지도 않다구요. 그런데 왜 눈물이 멈추지 않는지 알 수가 없어요. 게다가 검은 눈물이라니. 왜 눈물이 까만 거예요?"
"마법사님 마음이 새까맣게 문드러져서 그렇죠. 고생이 심하셨어요."
달님이 마법사에게 고생이 심했다고 말하자, 마법사는 울컥한 마음이 들었다. 그간의 일들이 하나하나 스쳐 지나갔다. 순간들 말이다. 마음이 무너지고 정성이 무의미해지는 장면들. 잊고 있던 순간들, 장면들을 다시 마주한 마법사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진짜 눈물을. 까만 눈물이 희석돼 회색빛으로 변했다.
"네, 고생이 심했어요. 말도 못해요. 알아주시니 감사하네요."
"알아주기만 하면 뭐 하겠어요. 눈물을 멈춰 줄 수도 없는데..."
달님은 검은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는 마법사가 안타까웠다. 하지만 까만 하늘에서만 빛이 나는 달님은 마법사의 검은 눈물을 닦아 줄 수가 없다. 검은 눈물에 물들어 자신이 지워질지도 모르니.
"마법사님, 마음을 너무 소진하셨어요. 검은 눈물은 마음을 지나치게 사용했을 때 나오는 거예요. 특히 정성과 성실을"
마법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달님의 말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마법사는 뭐든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싶었다. 사람들이 성장하여 자신의 꿈을 이루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래서 힘이 닿는 데까지, 언제나 초과해서 능력을 사용했다. 사용할수록 실력은 늘어나지만, 에너지가 줄어드는 것은 생각하지 않았다. 성실이 그의 장점이자 버릇이었기 때문이다.
"너무 성실했어요. 그래야 하는 줄 알았어요. 연결되면 나는 나의 능력을 모두 쏟아부어야 되는 줄 알았죠. 그게 누구든, 어떤 의도를 가졌든, 나는 언제나 성실한 마법사여야 했어요."
마법사는 거꾸로 매달려 본 세상에서, 혼자만 똑바로 서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두가 거꾸로 달리는 세상에서, 혼자만 앞으로 달리고 있었다. 모두가 움켜쥐는 세상에서, 혼자만 내어주고 있었다. 모두가 눈치를 보는 세상에서, 유난히 성실했다. 그럴수록 마법사는 빛나고 돋보였다.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으니까. 누구나 그렇게 할 수는 없으니까. 모두와 반대로 움직이는 마법사는 당연히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재능이고 재앙이었다.
"저는 매번 파산했어요. 최선을 다했다는 말이죠. 간절히 원했다는 말이죠."
"그래서 후회되나요?"
"아니요. 그럴 리가요. 다시 돌아가도 똑같을걸요. 후회할 일을 왜 하겠어요. 명색이 마법산데. 다만 소진되었다는 거예요. 에너지를 다 써버렸다는 말이에요. 가진 걸 모두 사용했단 말이에요. 그리고 이젠 이렇게 탑에 대롱대롱 매달린 신세가 되었어요."
마법사는 탑에 거꾸로 매달려, 자신의 삶을 거꾸로 돌려 보았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어디서부터인지. 사람들과 다른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한 것은 그 언제, 그 어디서부터인지 알 수가 없었다. 시작도 없이 마법사는 거꾸로 달리고 있었다. 어느 곳에서든 마법사는 거꾸로 달리고 있었다. 물론 그것이 마법사들의 숙명이지만.
"인제 그만, 바로 걸어요. 마법사님. 거꾸로 매달린 세상은 외롭잖아요."
"네. 저도 그러고 싶어요. 그런데요 달님. 저는 바로 걷는 법을 잊었어요. 남들처럼 보는 법을 잊었어요. 어떻게 하는지 배워 본 적도 없는 것 같아요. 그러니 나는 어떡하죠?"
달님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마법사를 지긋이 내려보다 이내 눈을 감고 말았다. 애처로운 마법사의 모습을 더 바라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달님마저 눈을 감자 세상이 암흑으로 가득 찼다. 빛이 모두 사라지자, 기온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달님의 빈자리로 추위가 몰려들었다. 거꾸로 매달린 마법사의 몸이 얼어붙기 시작했다.
'아, 이제 얼어붙는구나. 어쩌면 그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눈물이 얼어붙어 더 흘러내리지 않을 테니.'
마법사도 눈을 감았다. 눈물이 얼어붙어 눈꺼풀마저 얼려 버리면 눈을 감을 수도 없을 테니까. 눈을 뜬 채로 잠이 드는 건 피곤할 것 같았다. 물론 눈 뜬 시체가 되는 건 참혹한 일이고.
마법사는 모든 것을 소진한 자신의 삶이 자랑스럽다고 생각했다. 남기고 죽는 일은 가치가 있지만, 남은 채 죽는 것은, 끝난 여행에 환전하지 못한 동전처럼 미련이 남는 것이다. 다 써버릴 것을. 탈 대로 다 태운 가슴은 가벼운 마음으로 세상과 이별할 수 있으리라. 소진할 대로 소진한 마음은 미련 없이 새로워지겠지. 이제 빛도 없는 추위 속에서, 세상은 마법사의 남은 체온마저 소진시킬 터. 서서히 사그러드는 존재는, 한없이 가벼워진 존재는, 어디로든 갈 수 있을 거라고. 마법사는 또 다른 세상을 꿈꾸기 시작했다. 영원한, 끝이 없는 새로운 이야기를.
그때 누군가 저벅저벅 다가와 마법사의 몸에 외투를 둘렀다. 마법사는 깜빡깜빡 가물거리던 의식이, 누군가가 덮어준 따뜻한 외투의 온기에 다시 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누구지? 누가 감히 마법사의 소멸을 방해하는 거야.'
마법사는 살짝 짜증이 나기도 했지만, 외투에 깃든 체온이 너무 따뜻해 마음이 풀어지기 시작했다. 미련 없이 놓으려던 세상이 자신을 다시 붙들기 시작한 것이다.
"마법사님, 제가 가진 절반입니다. 물론 마법사님에 대한 보상으론 한없이 부족하지만, 제가 내어드릴 수 있는 최선이에요."
누군가 마법사에게 말했다. 자신이 가진 절반을 내어주었다고. 마법사는 깜짝 놀라 눈을 떴다. 그리고 가물거리는 시야 너머로, 반쪽짜리 외투를 걸치고 있는 누군가를 발견했다.
"누구시죠? 누구시길래, 제게 이런 호의를 베푸시는 거죠?"
"호의가 아니고 보상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전부구요. 저는 전사 마르탱이라고 합니다."
전사였다. 전사가 자신의 외투를 반으로 잘라 마법사에게 입혀 준 것이다. 전사는 경계근무를 서다, 에펠탑을 타고 거꾸로 날아오르는 마법사를 보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날 밤 꿈에 마법사로부터 열쇠를 받았다고 말했다. 비밀의 비밀을 푸는 열쇠를. 전사는 자신은 드릴 것이 없는데 무엇으로 보상해야 하냐고 물었다. 마법사는 놀라며 아무도 자신에게 보상을 이야기한 이가 없는데, 어찌 당신은 보상을 말하냐고 물었다. 전사는 그렇게 배웠다고 답했다. 아버지로부터 그렇게 배웠다고. 세상에 공짜가 없으니 받았으면 반드시 돌려주어야 한다고. 신께서도 창조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계시므로. 마법사는 그렇다면, 에펠탑에 누군가 매달려 있을 거라며, 그에게 외투를 나누어주라고 말했단다. 세상은 아직 그가 필요하니까.
마법사는 안타까웠다. 이제야 벗어나려나 싶었는데. 세상이 아직 필요로 한다는 말이 저주처럼 들리기까지 했다. 부족한 도파민 탓에 마음이 빈곤해졌기 때문이다. 보상 결핍 증후군에 시달리는 마법사에게는, 필요로 한다는 말만큼 메마른 말이 없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외투가 덮었다. 전사의 외투 반쪽이 마법사의 거친 마음을 따뜻하게 덥혔다.
"감사합니다. 이런 보상이라니. 이번 세상에서 좀처럼 경험해 보지 못한 따뜻함이네요. 아직 세상이 저를 필요로 한다면 세상은 저에게 이런 따뜻함을 주어야 할 것입니다. 봄이 밀어내지 못하는 겨울은 없으니까요."
마법사는 몸을 일으켜 바로 세웠다. 그러자 마법사의 진짜 눈물과 섞인 검은 눈물이 왈칵 외투에 쏟아졌다. 외투가 회색빛으로 물들였다. 소진된 마음과 녹아내린 마음이 화학반응을 일으켰다. 그리고 마법사는 전사에게 말했다.
"저도 당신께 보상을 해야겠군요. 무얼 원하십니까?"
"아니요. 저는 꿈에서 열쇠를 받은 것에 대해 보상을 한 것뿐이니, 괜찮습니다. 게다가 낡은 외투 반쪽일 뿐인걸요."
"별거 아니라니요. 자신의 전부를 나누어 준 것이나 다름없는데. 거부하셔도 어차피 저에게서 나가야 할 것입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까요. 대가를 치를 기회를 주세요."
전사는 마법사의 말에 곰곰이 생각하다가, 그렇다면 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말했다.
"타이밍의 마법사시라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제게 인생에 중요한 타이밍을 포착할 수 있는 눈을 주십시오."
"아하. 놀랍군요. 그런 소원은 처음 들어봅니다. 하지만 어려운 일은 아니지요. 말씀하신 대로 저는 타이밍의 마법사니까요."
마법사는 전사의 눈앞에서 팔을 쭈욱 펼치더니 크게 원을 그리며 회전시켰다. 그러자 천 개의 손이 마법사의 양옆으로 뻗어 나왔다. 천 개의 손안에는 모든 세계를 관찰하는 천 개의 눈이 박혀 있었다. 마법사는 그중 하나의 손을 전사에게 뻗어 악수를 청했다.
"자, 제 손을 잡으세요. 당신의 세 번째 눈이 떠질 때까지, 제 눈 하나를 빌려드리지요. 그러면 언제든, 어디서든, 당신의 타이밍을 명확하게 직관할 수 있을 겁니다."
전사는 손을 뻗어 마법사가 내민 손을 잡았다. 그러자 마법사의 손바닥에 있던 눈이 자신의 손바닥으로 옮겨 왔다.
"이 눈의 이름은 카림, karim입니다. 관대하고 지혜로운 아랍 영혼의 눈이지요. 이 눈으로 세상을 보면, 어렵고 위험한 상황이 닥쳐올 때마다 피할 곳이 어디인지 직관하게 될 것입니다. 전장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눈이지요."
마법사는 전사에게 눈을 감으라고 말했다. 그리고 당부했다. 손바닥으로 옮겨 온 세 번째 눈에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어지럼증에 시달릴 수 있으니, 옮겨 온 눈이 잘 안착할 때까지 깊은 잠을 자야 한다고. 이어서 마법사는 깊은 잠을 부르는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러자 소년은 정신이 아득해지더니, 끝없는 미로 속으로 빠져들어 가다 거대한 빛이 번쩍이고는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아침 해가 떠오른 것이다.
"앗, 꿈이잖아. 너무나 생생한 꿈이었어. 그런데 마법사님은 어떻게 된 거지? 내 손은? 아니 눈은? 아악!!'
잠에서 깨어난 소년은 비명을 질렀다. 소년의 손바닥에서 파란 눈동자를 가진 눈이 뚫어져라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_ [소년이안/시즌2] Chapter6. 마법사의 검은 눈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