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 100-3] 태양 같은 사랑, 진화하는 존재
태양 같은 사랑, 진화하는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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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 17 / Mickey 17 / 2025 / 한국, 미국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을 가장 싫어한다. 자신 혹은 누군가를 지하실로 던져 절대로 나오게 하지 않겠다는 고약한 선언이다. 고집스러운 태도, 거대한 돌문이 심장에 박혀 피가 돌지 않는 영혼, 영원한 머무름. 여기에 죄책감과 트라우마가 더해지면 돌은 더욱 단단해진다. 돌은 쉽게 부수어지지 않고 박힌 자리에 고통도 안겨준다. 그리하여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아'라고 최면을 걸어 돌을 최대한 건드리지 않고 살아간다. 억만 겹의 먼지가 그 위로 쌓인다. 생각만 해도 참을 수가 없다.
변하지 않는다는 말을 싫어하는 이유는 사실 나에게 있었다. 나의 이상은 분명했다. 이질감 없이 자연스러운 내 모습으로 사는 것. 그리고 나의 여건 안에서 할 수 있는 최대치의 예술가로 사는 것.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변화해야 했다. 바라는 방향이 있는데 거기로 나아가지 않고 두 발을 같은 자리에 딱 붙이고 서 있을 수 없었다. 채린 19는 우선 엄마의 무지막지한 영향력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정말 애를 썼지만 채린 29가 되어서야 절반 정도 벗어날 수 있었다. 인연이 끝날 때마다 변화가 필요한 세세한 항목들을 발견하기도 했다. 인연이 다한 순간에는 용광로로 뛰어들었다. 불구덩이처럼 아팠다. 새로운 인연을 만나기 위해서는 매번 그 시기만의 전례 없는 용기가 필요했다.
과거 버전의 나를 생각하고 있으면 왠지 전혀 다른 사람인 것처럼 느껴진다. 미키가 버전을 거듭할수록 미묘하게 달라진 것처럼 나 또한 이상향을 향해 들썩이며 나아간다. 한 인간이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면 얼마나 다른 자아가 될 수 있는가. 미키가 마침내 빨간 버튼을 누를 때, 내 속에 있던 몇몇 찌꺼기가 함께 떠올랐다. 과거의 연이 남긴 씁쓸함, 간절함이 용기를 넘어서지 못하던 날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엄마의 그늘을 벗어날 수 없던 시간들. 뫼비우스의 띠의 폭발. 익숙한 사고 방식과 습관을 따르지 않고 변화된 다른 행동 양식으로 넘어가면서 더 나은 존재로 나아가는 것이다.
내 인생 중 채린 30에서 일어난 변화가 가장 기억에 남는데, 그때부터 나에게 다시 사랑을 쏟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맡은 일에 충실한 와중에 예술을 어떻게든 삶에서 실현하면서부터 자존감도 회복되어 갔다. 되든 안되든 그냥 무작정 이상향을 살아버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나를 사랑해주는 것, 그렇게 살 수 있도록 나를 보호해주는 것에서 진화가 조금씩 시작되었다. 흔들림 없는 강력하고 따스한 사랑이 인간의 온전한 진화를 가능하게 한다. 그렇게 자기 안으로 쏟아지는 사랑은 외부에서 올 수도, 자기 스스로 생성할 수도 있다. 출처가 어디든 이러한 종류의 사랑은 자존감의 회복을 동반한다.
독일을 떠나기 전날, 오랜 역사를 품고 있는 영화관에서 연인과 함께 <미키 17>을 보았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를 독일에서 본다는 사실만으로 뭉클한 감정이었는데, 봉 감독 특유의 시나리오와 그가 그려내는 인물들의 감도가 무척 좋았다. 연인은 물론 뒷자리에 앉아 있던 독일인들도 영화가 끝날 때 환호성을 질렀다. 크레딧이 올라가고 커튼이 다시 닫히는 순간까지 모두 마음에 담아 영화관을 나섰다. 집으로 돌아가는 밤거리, 어떤 부분이 가장 좋았는지 묻는 연인의 질문에 피에타 조각처럼 미키를 끌어 안고 있던 나샤의 사랑이라 답했다. 더 많이, 더 오래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이른 아침에 공항으로 향해야 하는 부담 때문에 영화의 여운을 더 오래 잡아끌지는 못했다. 하지만 언제나 '다녀올게' 하고 나샤에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던 미키와 같이 담담하게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태양처럼 내놓는 사랑에, 태양으로 답하는 이가 있다.
나는 더욱 가볍고 즐거운 마음으로 용광로로 뛰어들 것이다.
"되든 안되든 그냥 무작정 이상향을 살아버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말이 복음처럼 들리는 군요.
돌이켜보니 불완전함을 파고든 게 구원의 작은 시작이었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