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804 기록

in Wisdom Race 위즈덤 레이스4 day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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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저녁 식사후 라다크 산골 마을의 길을 홀로 걸었다. 과식도 했고 좀 걸어야겠다고 다짐하고서 옷을 두껍게 껴입고 나섰더니 모두 숙소에 있겠다고 한다. 약간 섭섭해졌다. 그러면서 친절한건지 퉁명스러운건지 포장된 길을 따라 10여분 걸어가면 다리를 만나는데 룽타가 있을거라 한다. 거길 혼자가라구? 더군다나 한국도 아니고 어두컴컴한 외국의 산골길을? 숙소 주변의 별보기만 하면 충분할 것을 구태여 알려주는걸까? 거기서 한층 커진 계곡 물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해서 용기를 내어 거기까지 다녀오기로 했다. 빛이 없는 어두컴컴한 길을 혼자 걷는다는게 다소 겁이 났다. 나이 오십줄 넘도록 이래본 적 있었던가? 다소 자조 섞인 마음에 발밑이 어두워서 출처가 불명하게 냄새나는 소똥을 밟지 않으려고 조심 조심 경계하며 걷다가 갑자기 맞은 편 검은 덩어리가 어슬렁어슬렁 다가오는데 소인지 사람인지 소름이 돋고 혹시 라다크 도깨비 아닌가 생각도 되었지만 다행이 사람이다. 다소 쫄면서 선빵으로 "줄레이!"하니 나와 같은 레옹 모자를 쓰고 콧수염이 짖은 목소리가 중량감있는 톤의 라다크 아재다. 마찬가지로 화답한다. 산비탈에 잘다져진 길아래 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며 달빛을 등지며 혼자 걷는 밤길에 닭살이 쭈빗쭈빗 서면서 불교의 나라니까, 효력을 기대하며 나무아미타불 주문을 중얼중얼 외어가며 한참 걷다보니 나의 달그림자가 선명하여 벗이 되어준다. 달빛이 가로등 저리가라다. 이제 눈이 밝아지고 컴컴했던 주위가 훤히 드러나니 이것이 달빛의 위력인지 아니면 마음의 본성이 빛(心光明)과 같다는 표현에 아하 그렇구나 맞장구 쳤지만 그래도 무서운건 무서운거다. 혹시 눈표범이나 곰이 나오는거 아냐? 이생각 저생각 잡생각 짬뽕되니 그것을 숨과함께 고르면서 발바닥에 일어나는 생각의 조각들을 모아두고 살살 떨어가며 걷다 보니 어느새 다리가 있다는 목적지에 다가섰다.

한층 우렁차게 귀에 닿는 시원스런 물소리와 달빛 실은 바람에 반응하는 룽타(바람의 말)와 주위 경관을 살피니 이제 어둡지 않다. 나의 눈이 달 보다 밝은 빛(마음)을 내고 있는지도 모른채 살아가고 있는 건지... 달을 다시 올려다 본다. 반야심경에 무유공포(無有恐怖)란 구절이 떠올랐다. 어떠하여야만 공포심이 없는 것인가?

자아의식이 사라지면 무서울게 없는거다. 이거 확실히 하자고 불교 공부하는거다. '나'라는 개념이 마음 뿌리 깊이 사라진다면 그 사람은 두려움도 없어지고 분노도 사라지고 너그러워지고 그의 마음은 빛과 같이 광대해질 수 있다. 자비심은 여기서 뿜어나온다. 이건 완전한 허무주의의 나없음이 아니다. '나'라는 개념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겁없는 녀석이 절대로 될수없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달빛에 비추어진 나의 달그림자를 벗 삼으니 두려움은 줄었지만 잠시 걸음을 멈추고 혹시나 토착 도깨비들이 들으면 고마워해서 보호해준다는 자비경을 소리내어 읽었다.

나는 여전히 겁쟁이다. 언젠가 아주 겁없는 녀석이 되고싶다. 그래서 모두를 품어 앉아 평온하고 싶다. 이게 아마 마음이 불성(佛性)을 이룬 것일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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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voted! Thank you for supporting witness @jswit.

@peterchung, 정말 흥미진진한 라다크 산골 야간 산책 이야기네요! 사진 한 장으로도 그 고요하고 신비로운 분위기가 그대로 느껴집니다. 어둠 속에서 소똥을 피하고, 낯선 아재와 "줄레이!" 인사를 나누고, 달빛 아래 그림자를 벗 삼아 걷는 여정이라니, 마치 한 편의 영화 같아요.

특히 "자아의식이 사라지면 무서울 게 없다"는 통찰은 깊은 울림을 줍니다. 공포를 극복하고 진정한 평온을 찾고자 하는 작가님의 진솔한 마음이 느껴져 더욱 감동적입니다. 저도 가끔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혹시 라다크에서 만난 또 다른 인상적인 경험이나 깨달음이 있다면 더 공유해주실 수 있을까요? 작가님의 다음 이야기가 벌써부터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