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의 위력

라다크의 산골 마을 어두운 밤 달빛에 비친 그림자의 위력이 이렇게 강할 줄이야! 깊은 산골로 들어가지 않는 이상 한국에서 인공의 빛 없는 공간을 찾기 어렵다. 도시의 한창 덥고 습한 여름날이라면 가로등 불빛으로 달려드는 날파리들 때문에 그들의 몸에 부딪혀 흩어지는 빛과 그들의 요란스런 움직임이 보슬 비가 뿌려지는 것 같아서 안그래도 더운 마음을 더 끈적거리게 만든다. 인공의 빛이 사라지고 오로지 하늘에 둥둥 떠있는 달이라면 그런 걱정일랑 필요 없다. 달로 향하는 날파리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혹시나 그렇게 향하는 미련한 놈들은 제 풀에 의지가 꺾여버릴 것이다. 게다가 무더운 여름날 태양빛은 은총이기 보다는 학대에 가깝다. 과유불급이라. 넘쳐 나는 빛의 은총이 부담스럽다 못해 승질나게 만들어 미간이 저절로 찡그려진다. 하지만 달은 여름이건 겨울이건 시절에 상관 없이 학대의 빛이라도 온몸으로 받아 은근하고 부담스럽지 않은 빛으로 순화시킨다. 그래서 사람들이 달님에게서 낭만을 품은 것인지 모르겠다. 한량이 빛이 드문 산골에 있다면 한달 동안 변해가는 달빛에 의지하여 되비친 검은 빛의 형태가 변해가는 미묘한 모습을 살펴보느라고 잠못드는 깊은 밤 무료하지 않을 것이다.

25년 라다크 여행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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