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TY 100] 다음 과제
라다크는 지금 아주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15년 전부터 늘 느껴왔던 조마조마한 평화, 위태로운 균형마저 깨진 상황이다. 레에서 연방 정부에 자치권을 요구하는 시위가 일어났다. 경찰의 발포로 다섯 명이 죽었다. 울레에 있는 동안 처음 친구에게 그 소식을 듣고 가짜 뉴스 퍼뜨리지 말라고 콧방귀를 뀌었는데, 사실이었다. 경찰이 정말로 시위대에게 총을 쐈다. 머리와 가슴에 총을 맞고 20대 라다크 청년들이 죽었다. 다음날에는 레 시내에 통행 금지령이 내려졌다는 말을 들었다. 네 명 이상은 모여 다닐 수 없다고 했다. 수천 명의 경찰이 레 시내 전체에 깔려 있다고 했다. 가까스로 울레에서 탈출해 레로 돌아오는 길에 두 번이나 경찰의 검문을 받았다. 레에 도착하니 이곳은 유령 도시가 되어 있었다. 모든 상점은 문을 닫았고, 버스와 택시 운행도 중단되었다. 단식 투쟁 중이던 환경 운동가 소남 왕축은 시위를 주도했다는 의혹을 받고 어제 체포되었고, 오늘 라자스탄에 있는 감옥으로 송치되었다. 영화 세 얼간이의 주인공 란초의 모델이 되었던 그 사람 맞다. 그가 체포된 이후에는 통신도 끊겼다. 오늘은 몇몇 식료품점의 영업이 두어 시간 허가되었다. 거리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이 식료품점마다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과일 가게의 사과 더미 위를 뛰어다니는 쥐를 봤다. 사람들은 그새 상해버린 채소와 과일을 쓸어 담느라 여념이 없었다. 이 모든 일이 라다크에서, 정말로, 일어나고 있다. 아직도 믿을 수가 없다.
올해 운세에 인사신 삼형살이 들어왔으니 여러모로 조심하라는 말을 들었다. 형살이라니… 그 명칭부터 무시무시한 그것은 서로 치고받고, 사건 사고에, 피를 보고, 배신당하고, 갇히고, 아무튼 무척이나 흉하게 작동하는 것이라고 해서 지레 겁을 먹었었는데 올해 중반 지나 이제 마지막 분기에 접어들기 직전이 되어서야 그 흉하다는 것이 나의 에너지와 조응하여 어떤 작용을 했는지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사주는 물론이고, MBTI, 점성술, 수비학, 휴먼디자인 이거저거 다 뒤져봐도 나오는 결과 고오대로 살고 있는 클린 코드 인간으로서 따져보건대 올여름 홍수 때문에 두 번 울레에 갇히고, 차가 진흙탕에 빠져서 초카에 갇히고, 레에서 시위가 일어나서 울레에 또 갇히고, 레에 돌아와서는 통행금지까지 당했으니, 이토록 갇히고 또 갇혔던 적이 내 인생에 또 있었나 싶은 것이다. 그래서 갇혀 있는 시간이 내게 시련과 고통이었는가 하면 그건 아니다. 물론 ‘갇혀 있는 상황’ 자체는 다루기 쉽지 않았지만, 내가 얻은 통찰, 내가 일군 사랑, 울며불며 부딪혀 풀어낸 숙제, 해결한 갈등, 그 모든 레벨업은 갇혀 있었기에 가능했음을 9월이 끝나가는 이 시점에 깨닫는다.
이틀 뒤면 난장판이 된 라다크를 뒤로 하고 떠나야 한다. 친구들을 두고 떠나야 한다.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뭘 해야 할까. 다음 과제가 내게 건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