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100] 여름의 신

in Wisdom Race 위즈덤 레이스23 day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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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사랑 자체를 회피하기 위해 삶을 사랑하는 체한다. 즐기려고 노력하고, '경험을 쌓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그것은 고매한 정신의 관점이다. 쾌락주의자가 되려면 흔치 않은 자질이 있어야만 한다. 인간의 삶은 고매한 정신의 도움 없이 후퇴와 진전을 반복하면서, 고독과 동시에 존재들의 상호작용을 통해 완성된다. 일을 해서 아내와 자식들을 부양하면서 대개는 아무 불평 없는 저 벨쿠르 사람들을 보노라면, 슬그머니 부끄러운 기분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 이제 더는 사랑이 많지 않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삶들은 적어도 아무것도 회피하지 않았다. 내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단어들이 있는데 가령 죄란 단어가 그렇다. 그럼에도 나는 그 사람들이 삶을 거스르는 죄를 짓지 않았다는 것을 알 것 같다. 왜냐하면 삶을 거스르는 죄라는 건, 아마도 삶에 몹시 절망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다른 삶을 바라고 현생의 준엄한 위대함을 회피하는 것일 테니 말이다. 그 사람들은 속임수를 쓰지 않았다. 그들은 여름의 신들이다. 스무 살의 그들은 삶에 대한 열정으로 여름의 신이었고, 모든 희망을 잃은 지금도 여전히 여름의 신이다. 나는 그들 중 두 사람이 죽는 것을 보았다. 그 두 사람은 공포로 가득 찼지만 말이 없었다. 차라리 그편이 낫다. 인류의 죄악이 우글거리는 판도라의 상자에서 그리스인들은 모든 악을 쏟아낸 후 그중에서도 가장 끔찍한 악인 희망을 꺼내 들었다. 나는 이보다 더 감동적인 상징을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희망은 통념과 달리, 체념과 동격이기 때문이다. 산다는 것은 스스로 체념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적어도 알제의 여름이 주는 엄중한 교훈이다. 하지만 이미 계절은 흔들리고 여름이 기운다. 숱한 폭력과 경직 끝에, 9월의 첫 비가 내린다. 마치 며칠 새 이 고장에 부드러움이 스며든 듯, 해방된 대지의 첫 눈물 같은 비다. 같은 시기에 캐롭나무가 알제리 전역에 사랑의 향기를 퍼뜨린다. 저녁이나 비가 내린 뒤에, 쌉싸름한 아몬드향 정액으로 배를 적신 대지 전체가 여름 내내 태양에 바쳤던 몸을 쉬게 하고 휴식한다. 이제 이 냄새는 다시 인간과 대지의 결혼을 축복하고, 우리에게 이 세상에서 진정으로 생생한 단 하나의 사랑을 일깨운다. 끝내는 스러질 것이나 너그러운 사랑을.

알베르 카뮈, <알제의 여름>



희망도 체념도 치워두자. 속임수를 쓰지 말자. 봄이 끝났다. 여름의 신 나가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