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ty 100] 야생의 세계로의 초대
돌핀 호텔 건물주인 오짤의 둘째 동생 노르부의 갑작스러운 제안이었다. 울레에 볼일이 있어 온 김에 겸사겸사 취미 생활을 하려는 모양이었다. 새를 관찰하는 취미에 대해 들어본적은 있다. 새를 찾아 은밀하고 조용한 곳으로 모여들어 몇시간이고 가만히 새를 들여다보고 소리를 듣는다는 사람들을. 나는 새를 싫어해서 한번도 그런 취미에 관심을 기울여 본 적은 없다. 새를 싫어하게 된 이유는 전적으로 비둘기 탓이다. 서울의 일상 속에서 내가 자주 볼 수 있는 새라고는 고작 비둘기 뿐이고 목을 한껏 부풀리며 역겨운 소리를 내는 비둘기를, 음흉한 눈빛을 발사하며 달겨드는 비둘기를, 날지 못하고 퍼드덕 거리며 길바닥을 전세 낸듯 주저앉아 있는 비둘기를, 횡단 보도의 전선에 일자로 앉아서 똥을 싸갈기는 비둘기를 좋아할리 없지 않은가? 비둘기가 못견디게 싫다보니 그를 닮은 뾰족한 부리와 퍼덕이며 언제든 사람을 공격할 수 있는 잠재성을 가진 조류 전반에 대한 반감으로까지 번졌다. 조류에 대한 나의 호불호를 뒤로 하고 이제 곧 떠날 피터와 무엇을 함께할까 고민하던 중이었으니 새 관찰은 퍽 반가운 제안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가지 일에 골몰하는 덕후의 세계를 몰래가 아닌 대놓고 살펴볼 수 있다니 그건 일종의 행운이다. 늦장을 피우면 기회를 날릴까 서둘러 채비를 하고 5시 30분에 노르부 뒤를 셋이 나란히 쫓았다. 노르부는 돌핀 호텔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를 잡고 제법 크고 그럴싸한 이 망원경을 설치하고 새소리를 구분해준다는 어플을 켰다.
찌르르, 삑삑, 찌로로롱
어플로 새소리를 녹음하기 시작하니 울음소리의 주인이 어플에 하나둘씩 뜬다. 그놈의 새소리 달라봤자 얼마나 다르겠어 생각했는데 귀기울여 들으니 사람마다 목소리와 말투가 다른 것 만큼 완전히 다르다. 세상에 존재하는지 몰랐던 공공연한 비밀의 문을 연 기분. 울레에서 아침마다 들리는 새소리가 얼마나 많은 새의 목소리가 섞인건지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울레에서 가장 시끄럽게 자주 우는 새는 그리니쉬 워블러. 한국말로는 연둣빛솔새. 그가 등장하면 새 러버들이 사족을 못쓸 만큼 희귀한 새지만 울레에서 만큼은 가장 흔하고 수다스럽다. 들리는 새소리의 열에 여덟은 그의 목소리다. 어플에서 자세히 보기를 누르면 그 생김새도 볼 수 있다. 그리니쉬 와블러는 반달맹키로 투실투실하고 살집있는 몸에 등짝에 등고선처럼 그려진 선, 땡그란 눈이 인상적이다. 그와 같은 와블러지만 흄스 와블러, 연노랑눈썹솔개는 좀 더 얄쌍하고 연두색 빛깔의 털로 뒤덮여 있다. 유라시안 렌, 웨스턴 하우스 마틴은 멋스러운 이름 때문인지 마치 락밴드의 보컬인것만 같다. 그들이 지저귈때마다 렌 오빠마틴 오빠꺄악~~이라고 열광적인 팬인냥 소리지르는 상상을 했다. 그러면 가죽 잠바를 입은 렌이 윙크를 날리고 찢어진 청바지를 입은 마틴이 손키스를 날린다. 실제로 유라시안 렌의 노랫소리는 신비스럽고 아름답다. 새는 너무 작아 망원경으로도 제대로 볼 수 없지만 믿을 수 없는 동체 시력을 가진 노르부는 산 등성이에 앉아 있는 새를, 전깃줄에 앉아 있는 새를, 둥지를 틀고 정착한 새를 잘도 찾아내 보여줬다. 둥실둥실 떠오른 수백개의 서로 다른 솜사탕으로 불규칙한 패턴을 만든 하늘을 배경으로 날아다니는 새들의 울음에 가만히 귀 기울인다. 전날까지만 해도 이름이 없던 소리에 이름이 생겼고 배경음에 불과했던 소리가 주인공이 되었다. 그리고 새를 싫어하던 나는 놀랍게도 그들의 이름과 울음을 수집하고 싶어졌다. 다시 망원경으로 산 전체를 훑던 노르부는 어느 한 곳에 고정시켜 놓고 의기양양한 얼굴로 무엇이 있는지 찾아보라고 했다. 아무리 눈을 씻고 들여다봐도 그저 흙산에 흙과 바위, 모래만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문득 바위 하나가 움직였고 그 바위와 그 주변에 모여있는 갈색의 큰 점들이 동물인 것을 알 수 있았다.
“찾았어. 저 동물은 뭐야?”
“유리알. 히말라야 산양이야.”
머리에 크고 유려한 두 개의 뿔을 가진 숫놈 유리알 12마리를 더 가까이 보기 위해 우리는 차를 타고 마을에서 가장 높은 집으로 올랐다. 그 사이 자리를 옮겨 흙산으로 위장해 사라져버린 유리알을 찾는 것 숨은 그림 찾기보다 몇천배는 더 어려웠고 이만 포기하려고 가려던 중 노르부가 소리쳤다.
“찾았어.”
자유분방하게 앉아있다 이동하는 유리알 떼를 바라보며 거기 있는 줄 몰랐지만 거기 있어 왔던 울레의 야생 동물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저 산 어딘가에 분명 있을 눈표범까지도. 작년 내내 우리가 울레를 산책하고 돌핀 호텔에 있는 동안 그들은 우리 주변에 있었다. 우리가 매일 바라보던 그 산 어딘가에. 해독할 수 없는 수 많은 비밀로 복잡하게 얽힌 세계 속에서 내가 읽고 찾을 수 있는 비밀은 전체에 얼마나 해당할까? 내 관심사가 아니어서 접근하지 않았던 어떠한 것들을 아주 작게, 일부만 알게되는 것 만으로도 세계는 확장되기도 한다. 맨날 하던 거, 뻔한 거, 뻔한 패턴에서 벗어난 내가 가보지 못한, 경험하지 못한 세계로의 초대는 언제나 두팔 벌려 환영이다. 이 날 예상치 못한 작은 탐험처럼 말이다.
세상은 우리가 잘 모르는 것으로 가득차 있군요. 경이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