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ty 100] 정말 있었던 일이야, 아직 사라지지 않았지. 종쿨의 기적
“종쿨은 정말 놀라운 곳이야. 하루는 어떤 친구가 잔스카르에 와서 내 숙소에 묵었어. 그 친구는 사람들과 어울리지도 말도 하지 않고 굉장히 부정적인 에너지를 온몸 가득 내뿜고 있었지. 그런데 그 친구가 종쿨 곰빠를 다녀와서는 나를 꼭 안아주고 기쁨에 가득 차서 환하게 웃더라고. 나는 엄청나게 종교적인 사람은 아니지만 종쿨의 에너지만큼은 정말 놀랍고 신비롭다고 생각해.”
잔스카르 여행 첫 날 묵었던 숙소의 주인이자 싱게의 친구인 스텐진의 말이었다. 큰 기대는 보통 실망으로 이어져 씁쓸한 뒷맛을 안기기 마련이다. 나는 스텐진의 이야기를 들으며 종쿨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지만 애써 눌렀다. 동굴 마니아인 피터 덕에 2023년 춘자로드부터 지금의 춘자로드까지 참으로 많은 동굴을 다녔다. 티베트에 불교를 전파한 구루 린포체가 명상을 했다던 포카르종부터 사원 안에 동굴이 있는 딱똑 곰빠, 신성한 동굴터를 사원으로 바꾸어 놓은 이구 카스팡, 그리고 바로 며칠 전 잔스카르에서 다녀온 바위 절벽 동굴에 지어진 푹탈 곰빠까지. 작은 동굴에 몸을 맡기고 눈을 감고 있으면 서늘한 기운이 올라와 시원하고 기분이 좋아지긴 했지만 강렬한 영적 체험을 한다거나 유체 이탈을 한다거나 하는 특별한 걸 느낀 적은 없었다. 종쿨 가는 길에는 기묘하게 생긴 빙하가 먼 곳에서 손가락 하나를 치켜 들고 있었다. 초모는 삐죽 튀어나온 빙하를 가운데 손가락이라며 ‘뻐큐’라고 장난쳤지만 내 눈에는 ‘바로 이 곳’이라고 가리키는 검지 손가락 같았다. 바로 그곳에 당도하였을 때, 그리고 동굴로 만들어진 첫 번째 법당에 들어섰을 때 내 안에 무언가가 ‘쩌적’ 금이 가기 시작하더니 서서히 틈이 생겨 갈라지고 벌어졌다. 일어나면 머리가 닿을 듯 낮은 동굴에서 다섯 개의 불상을 보며 눈을 감고 있으니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줄줄 흘렀다. 늘 불당에서 습관처럼 비는 염원들을 언제나처럼 속으로 읊조리는데 언제나와 같지 않았다. 주문을 외우 듯 영혼 없는 읊조림에 간절함이란 작은 불씨가 달라 붙어 점점 커지더니 커다란 불이 되어 맹렬하게 휘몰아치고 얼굴을 타고 흐르는 눈물은 흐느낌이 되었다. 틈이 생기고 갈라진 것들은 그 안에서 산산조각 나서 공중에 흩어졌다. 그것은 내 안에 있었던 더러움, 악함, 질투, 나쁜 마음, 이기심, 수치심, 내가 나라서 육체를 가진 인간이라 갖는 번뇌 같은 거였다. 분명히 그랬다. 설명할 수 없지만 그랬다. 다음 법당에서는 유리 벽 안에 놓인 불상을 넋 놓고 바라 봤다. 그러다 문득 유리에 비친 내 얼굴이 보였다. 나는 주춤주춤 위치를 조정해 불상의 눈코입에 나의 눈코입을 갖다 대었다. 그것은 마치 하나인 것처럼 꼭 들어 맞았다. 안경을 쓰고 코가 짧은 부처가 거기 있었다. 그것은 나이기도 했고 내가 아니기도 했다. 그러나 내 안에 부처가 분명 있었다.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티끌만큼 작을 수도, 손톱만큼 작을 수도, 주먹 크기 일 수도, 그보다 클 수도 있었다. 크기는 가늠할 수 없지만 분명히 내 안에 부처가 있었다. 신성한 물을 두 손으로 조심스레 받아 마시고 기침이 멈추지 않는 목과 다래끼가 올라온 눈에 살포시 비볐다. 그리고 사원 밖으로 나왔다. 이렇게 끝인 줄 알았지만, 아직 끝이 아니었다. 얼만큼 더 가야 할지도 모를 만큼 멀고 가파른 곳에 있는 작은 건물, 그곳이 우리의, 종굴 곰빠의 마지막 목적지였다. 높은 곳을 오르는 걸 싫어하고 지독히도 못해서 등산도 계단도 기피하는 나지만 그 오르막길 만큼은 조금도 거리낌 없었다. 아니, 오히려 기꺼웠다. 연쇄적으로 나를 강렬하게 훑고 가는 이 기운과 폭발적인 감정이 저곳에서 오롯이 갈무리 될 것만 같은 예감에. 오랫동안 기다렸던 순간처럼, 이미 예정된 길을 오르는 것처럼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평소보다 빠른 발걸음으로 서둘러 올랐다. 다리와 몸이 날아갈 것 처럼 가볍고 몇 주 째 날 괴롭히던 기침은 신기하게도 단숨에 멎었다. 신성한 물 덕분일까? 그리고 도착한 건물 안의 동굴은 인도의 밀교 수행자이자 대승불교의 위대한 스승인 나로빠가 수행했다는 곳이다. 어둠 속에 우두커니 서 있는 나로빠의 상은 눈을 번쩍 뜨고 있는데도 지그시 감은 눈처럼 보이기도 했다. 동굴 위쪽에는 나로빠의 발자국이 선명하게 찍혀있었다. 나로빠가 물구나무를 서서 동굴을 들어올렸다는 증거이다. 동굴 안에서도 작은 골방 안에 들어가 눈을 감았다. 내 뒤에는 부처님의 세계를 그린 만달라가 벽에 정교하게 그려져 있었다. 쨍하면서도 명료하고 깨끗한 기운이 온 몸에 깃든다. 더러운 것을 씻어낸 자리에 새살 돋듯 말간 기운이 구석구석 차오른다. 이곳을 오기 위해 잔스카르를 왔구나. 고행 같았던 잔스카르의 여정은 오늘의 깨달음을 위한 발판이었다는 것을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나의 종교는 불교도 아니고, 불교를 공부한 적도 없고, 지대한 관심을 둔 적도 없다. 그저 라다크에 강한 끌림으로 머물게 되면서 사원은 친근하고 편안한 장소가 된 것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신묘하고 강렬한 경험은 종쿨 사원을 둘러싼 신비한 산과 빙하, 그리고 동굴 깊숙이 응축된 사념과 에너지들이 뒤엉켜 만들어낸 것이다. 드래곤볼 7개가 모이면 소원을 빌 수 있는 것처럼, 내가 미처 알지 못한 여러 조건들이 자연스레 모여 만들어낸 기적. 정상에서 마주한 나와 춘자, 피터는 뭉클, 올라오는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동그랗게 서서 얼싸 끌어안고 울었다. 이번 춘자로드의 첫 번째 크리스탈이 형성된 순간이었다.
부럽습니다. 그런 경험을 하셨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