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6-12] 이천원을 잃어버리다

in #zzan11 day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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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오전 시간을 보내다
점심을 먹으러 나섰다.
최근까지 자주 갔던 콩나물국밥집은 식상하다.
지난번엔 콩나물이 안 익은듯 질겼다.
오늘은 분식집으로 가보자.
날 더운데 쫄면 괜찮지.

나, 자영업자들 편에 있는 오지라퍼.
카드 안 하고 꼭 현금으로 한다.
올라서 육천 오백원이네.
셀프 코너에 가서 반찬과 국물을 담아 온다.
음, 쫄면의 고추장에 식초를 넣지 않아 좋구만.
나이 먹으니 신 게 싫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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쫄면을 처음 먹어 본 것이 아마 중딩때지.
깡촌에는 분식집이란 게 없었다.
마을 입구에 주막집이 고작.
주막집에는 술 좋아 하는
아저씨들 목소리가 그득했고
입구까지 막걸리 냄새가 풍겼었다.

중딩 때 새로 친해진 친구가
분식집으로 이끌었다.
매콤달콤함까지는 좋았는데,
면에 고무재질을 넣은 건 아닐까 의심했다.
그러지 않고는 이토록 탄력이 있을 수 없다.
신기한 음식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식사를 마친 후 밖으로 나오니
헉, 30도에 육박하는 기온이다.
가족애가 발동하여 뒷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밭고랑에서 땀 쏟고 있을 가족1에게 전화했다.

더우니까 적당히 하고 와......

요새 기운이 없다고 했더니
푹 쉬라고 하고
혼자 밭에 간 가족1이다.
그녀도 나이 먹으니 동포애가 생기나 보다.

도서관으로 다시 올라온 새에
겨드랑이와 등짝에 땀이 찬다.
이제 남은 것은 자글자글 끓는 더위 뿐이로구나.

그런데 이천원은 어디 갔지?
8천원과 5백원짜리 동전을 들고 나가서
6천 5백원을 계산했으니
주머니에 이천원이 있어야 하는데, 없다.

아까 바지 뒷주머니에서 휴대폰 꺼낼 때
딸려 나와서 떨어졌구만.

어쩐다......
거길 다시 가봐?
너무 더운데?
이천원이면 작은 돈은 아니야.
아암, 예전 생각하면 큰 돈이지.

초등 자녀에게도 개인적인 용돈이 필요하다고
라디오에서 들은 아버지가
엄마와 동생들 몰래 쥐어준 천원을 생각해 봐.
주머니를 잊고 바지를 바꿔입고 등교한 날,
엄마가 빨아서 돈이 찢어지면 어쩌지,
한 시간 거리의 하굣길을 30분만에 달렸잖아.

맨날 토스 앱 들여다 보며
2원, 3원. 어쩌다 10원 나오면
좋아라 환호 하면서,
이건 무려 2천원인데
네가 확실히 배가 불렀구나?
예전 같았으면 진작 뛰어 내려갔을텐데,
한가하게 이빨 닦고 있네.

올라왔는 그대로 내려가서
건너왔던 그대로 건너서 분식집 앞까지 갔다.
당연히 없다.
눈 밝은 누군가가 주워갔나 보다.
오늘의 운세에서 손재수가 있다더니.


김훈 작가는 말년에 멋진 문장을 지으면서
'허송세월'하는데
나는 캐시와 지폐를 구분 못하는
허송세월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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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voted! Thank you for supporting witness @jswit.

토스로 10원 20원은 열시미 모으면서 막상 돈 쓸 때는 그런 생각 잘 못하는거 같아요.

좋은 글 잘 읽고 가요~

ㅎㅎㅎ
좋은일 하셨다고 생각하세요.

우리 막둥이는 매일 초등학교앞 분식집을 그냥 못 지나가고 천원만 이천원만 보내달라고 노래를 부른답니다~

그나저나 쫄면 너무 맛있겠어요^^

쫄면은 인천이 원조 입니다
어릴때 부터 쫄면을 먹어서 그런지
지금도 여전히 쫄면을 좋아라 해요 ㅎㅎㅎ

한 달 열심히 걸어야 겠네요. ㅋㅋ

가족 1은 천사입니다.

제 5 회 스팀잇 포스팅 큐레이션 이벤트 참여자 글 - 2025-06-13
https://www.steemit.com/@talkit/-5----------2025-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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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몇원 줍줍이 하다가 트레이딩손실나면 이상하게 덤덤해지쥬 .,.이천냥몇배로 꼭 다른것으로 보상받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