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독서중-지독] 구렁이들의 집(최인석)

in #zzan6 day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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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훈도 읽어 봤고, 최인호도 읽었는데
최인석? 처음이다.
지난 번 '지독'에서도 밝혔듯이
백가흠 작가의 '왜 글은 쓴다고 해 가지고서'에
나오는 작가와 작품이다.

도서관 지하 서고에 잠들어 있는 책을
굳이 불러내는 나도 꽤 고약한 이용자다.

그런데 책을 들고 읽다가 표지를 보니, 어라?
뒷표지에 진한 갈색의 이것은 피?
오래전 누군가가 책에 피를 흘린 모양이다.

'지하서고의 비밀'이라는 스릴러 제목이
떠오르면서 찝찝했지만
물휴지로 깨끗이 문질렀다.

읽다 보니(낮에 마신 커피 때문에) 새벽 3시.

한마디로 '이렇게 잘 쓰는 작가가 있었구나'.

네이버에 최인석을 검색하니 최근엔 작품 활동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근황도 드러나는 게 없어 더 궁금해진다.

[구렁이들의 집]은 총 다섯 편으로 구성되었다.
주인공은 하나같이 가난하고 외롭고 의지할 곳이 없다. 아비와 어미는 주인공을 버리고 떠났다.
일찌감치 세상의 험난함과 외로움을 몸으로 겪어가는 이들은 우연히 어떤 민담, 전설, 신화 속의 초월적인 존재들과 만난다.
말더듬이 아이가 세상과 타협하지 못한 큰아비에게 보내져 목격하게 되는 '구렁이가 사는 집'도 그렇고, 부모에게 버림받은 가난한 아이가 북한 국기를 그렸다는 이유로 고문 당하는 '잉어 이야기'에서는 주인공이 잉어가 되어 물속으로 돌아간다는 내용이다.
그런가 하면 '모든 나무는 얘기를 한다'와 '포로와 꽃게'는 연좌제와 양심적 병역 기피자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사회의 변두리로 밀린 이들은 나무나 신화 속의 거대한 꽃게를 상상하며 견딘다.
'봉천동, 그 찬란하던 날'에서도 목욕탕 털이범 주인공이 아내와 아내의 새 남자를 처단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출소하나 추적해 보니 아내도 속았다. 결정적인 순간에 이 잡범의 눈에 보인 푸른 송아지를 비롯하여 잉어, 나무, 게, 구렁이 등은 모두 어떤 초월적 존재를 상징한다.
보통 때는 잊고 있으나 절망적인 순간에 보이는 존재들.

저자는 가난한 사람들, 버려진 사람들, 뭔가에 중독된 사람들의 특징을 예리하게 잡아 낸다.
자칫 르뽀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여기에 초월적 존재를 등장시켜 문학적 감수성을 격상시킨다. 구제할 길 없는 인간 본성, 그러나 차마 외면할 수는 없으니 신 대신 물속으로 돌아 가버린 인간 잉어는 어떤지.
'구렁이'처럼 지혜롭고 매끈하면서도 등골 서늘함을 주는 소설작품이다.

최인석 / 창비 /2001 / 8,000/ 소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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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주신 책 요약이 참 재미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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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새벽 3시까지 붙잡는 책이라면 대단한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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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취향의 차이가 있으니까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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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일주일에한권씩은 읽으시나봐여 ㄷㄷ

눈 침침해서 못 보기 전에 부지런히 읽으려구요. ㅎㅎ

오오 이런 소설 안 읽은지 좀 되었네요 ㅠㅠ

거의 역사서관련 읽는게 많다보니... 대단하십니다. 책읽는다는거 자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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